마야카마스 시음회에 오른 와인들. ⓒ씨에스알와인
마야카마스 시음회에 오른 와인들. ⓒ씨에스알와인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도네이를 떠올리면 대개 화려하고 풍만하며,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오크와 과실향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존의 나파밸리 와인들과는 한끗 다른,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전통의 가치를 지켜 온 와인이 있다. 1976년 세계 와인사의 흐름을 바꾼 '파리의 심판'에 1971년 빈티지 카베르네 소비뇽을 올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야카마스 얘기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서 씨에스알와인 주최로 열린 마야카마스 시음 간담회에서 캐시 콘 마야카마스 글로벌 세일즈 디렉터는 "마야카마스는 나파밸리가 잃지 말아야 할 클래식의 원형이자,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대함이 증명되는 와이너리"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시음회는 다양한 빈티지를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기후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클래식한 품질을 유지해온 마야카마스의 위상을 재조망하는 순서로 이뤄졌다.

100년 묵은 오크통과 유기농 농법

마야카마스에선 오래된 오크 통을 여전히 실제 와인을 숙성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mayacamas
마야카마스에선 오래된 오크 통을 여전히 실제 와인을 숙성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mayacamas
1887년 설립돼 현재까지 이어온 마야카마스의 빈야드는 안개층 위에 위치한 척박한 마운트 비더(Mount Veeder) 산악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서늘한 기후와 화산암 석회질 토양(레드 품종 식재) 및 모래 토양(화이트 품종 식재)이 어우러져 단단한 골격과 독보적인 미네랄리티를 완성한다.

콘 디렉터는 “2013년부터 100% 올가닉 농법으로 전환해, 같은 땅에서 양을 키우고 다이콘이나 머스타드 같은 작물을 함께 재배하며 생태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와이너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수확자(Picker)들이 매년 교체되는 타 와이너리와 달리, 수년째 같은 인력이 숙련된 손길로 포도를 세심하게 수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조 방식 역시 대단히 클래식하다. 1889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석조 와이너리 지하에는 100년에서 150년 된 오래된 대형 중성(Neutral) 오크통이 여전히 실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다른 와이너리에서는 100년이 넘은 오크통을 전시용으로 놓아두지만, 우리는 여전히 와인을 숙성시키는 데 사용한다"며 "새 오크통의 강한 향으로 와인을 덮기보다는, 중성 오크와 1940년대부터 이어져 온 콘크리트 배럴 발효를 통해 포도 본연의 과실향과 선명한 산도를 지키는 것이 마야카마스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캐시 콘 마야카마스 글로벌 세일즈 디렉터.  ⓒmayacamas
캐시 콘 마야카마스 글로벌 세일즈 디렉터. ⓒmayacamas
보통의 나파 와이너리들이 30일에서 90일까지 길게 마세라시옹(침출)을 가져가는 반면, 마야카마스는 15~20일 정도로 짧고 깔끔하게 발효를 마친다. 과도한 추출을 피하고 산도를 선명하게 유지하는 이 기법이 바로 마야카마스가 장기간 생명력을 발휘하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미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의 버티컬 테이스팅에서는 50년의 시차를 둔 1968 빈티지와 2018 빈티지가 나란히 97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기도 했다.

실제 이날 시음회에서 맛본 각 빈티지는 나파밸리의 전형적인 와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마야카마스 샤도네이 2023 (Mayacamas Chardonnay 2023)의 경우 나파 샤도네이 특유의 무거운 버터리함과는 다른, 정갈하고 깔끔한 마무리가 놀라웠다. 콘크리트 발효와 스테인리스 스틸, 중성 배럴을 조합하고 저온 젖산 발효를 진행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크리미한 질감만 남겼다는 설명이다. 특히 2023년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해 손에 꼽을 정도로 완벽했던 빈티지로 꼽힌다.

마야카마스 메를로 2023도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냈다. 최근 몇 년간 포도 수확량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생산을 중단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품종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자두, 베리류 과실미가 풍부하게 느껴지고, 허브와 철분감, 미네랄이 더해져 뼈대 있는 우아함이 느껴졌다.

마야카마스 카베르네 소비뇽의 경우 2003 올드빈티지와 2021, 2023 빈티지를 비교해 시음했다. 검붉은 과실향과 타바코, 미네랄이 전반적으로 잘 느껴진다. 특히 2021년의 경우 비가 충분히 내린 뒤 화창한 여름이 이어져 평년보다 빠른 수확이 이뤄졌다. 서늘한 산악 기후 덕분에 풍부한 과실감 속에서도 서늘한 산미가 확고하게 중심을 잡는다. 2023의 경우 당장 화려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장기 숙성시 잠재력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전한 과실향과 산미를 간직한 2003 빈티지를 맛보니 그 믿음이 증명되는 듯 했다.

기후 변화 속에서 시간을 견디는 와인

화재 후 전면 리뉴얼한 마야카마스의 테이스팅룸. ⓒmayacamas
화재 후 전면 리뉴얼한 마야카마스의 테이스팅룸. ⓒmayacamas
콘 디렉터는 최근 나파밸리가 직면한 기후 변화와 산불에 대해서도 이날 언급했다. 마야카마스는 실제로 2017년 큰 산불로 역사적인 돌 건물의 일부가 타버리는 아픔을 겪었지만, 현재는 모던하고 현대적인 테이스팅 룸을 재건축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8월 중순이나 되어야 수확을 시작했지만, 온난화로 인해 최근에는 10일 이상 빠른 7월 말~8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한다"며 "갑작스러운 폭염이나 기습적인 폭우, 산불 연기 위험 등 기후 변화는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무서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2020년 산불 악재 속에서도 빠르게 수확을 마쳐 와인의 품질을 지켜냈다"며 "마야카마스는 어떤 환경에서도 본연의 산도와 구조감을 지키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30년 전 생산된 올드 빈티지를 마셨을 때 여전한 향과 산도가 느껴지는 것을 목격하면, 이들이 왜 '시간이 증명하는 와인'이라 불리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씨에스알와인 관계자는 “마야카마스는 나파밸리가 빠르게 변해가는 와중에도 클래식의 원형을 고수하며 세대를 초월하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에스테이트”라며 “파리의 심판 이후 반세기의 시간이 다시 한번 증명한 마야카마스의 품격을 한국 와인 애호가들이 직접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