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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리더가 역사를 바꾼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신간 <리더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히틀러가 없는 1930년대 독일을 다시 돌려볼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7년 만의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이 불가능한 실험에 도전한다. 그동안 지리와 환경, 제도처럼 개인을 넘어선 거대한 힘으로 문명의 흥망을 설명해온 그가 89세의 나이에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역사를 움직이는 데 '한 사람'의 몫은 대체 얼마나 될까.
다이아몬드는 이를 판별하는 사고법을 '햄릿 테스트'라고 부른다. 셰익스피어가 없었다면 누군가 <햄릿>을 쓸 수 있었을까. 답이 '아니오'라면 셰익스피어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다. 반대로 찰스 다윈이 없었더라도 자연선택설은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중요한 질문은 '누가 위대한가'가 아니라 '그가 없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다.
문제는 역사에 비교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사회과학의 '자연실험'을 끌어온다. 대통령이 암살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최고경영자(CEO)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교체됐을 때처럼 우연히 비교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진 사례를 들여다본다. 정치·기업·스포츠·종교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한 책에 모은 이유다.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리더에게 인색하다. 기업의 실적 변동에서 CEO 개인으로 설명되는 몫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그 비중은 대략 6~29%다. 산업의 특성도 중요하다. 향수나 패션처럼 시장 변화가 빠르고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전략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업종에서는 CEO의 영향력이 크지만, 철도나 공공서비스처럼 규제가 강하고 사업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 분야에서는 작다. 저자는 이를 '경영자의 재량권' 개념으로 설명한다. 리더가 얼마나 뛰어난지만큼이나 그에게 실제로 무엇을 바꿀 권한이 주어졌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리더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은 아니다. 다이아몬드가 중요하게 다루는 인물이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다. 1966년 독립 당시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후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경제성장 사례가 됐다. 저자는 다이아몬드 자원이라는 행운만으로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원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카마는 전통 추장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활용했다.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그 기회를 결과로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칭기즈칸에게도 군사적 천재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 몽골 초원은 이례적으로 습윤해 말과 가축을 먹일 풀이 풍부했다. 마크 저커버그와 스티브 잡스 역시 기술혁명이 폭발하던 시대를 만났다. 반대로 윈스턴 처칠이나 샤를 드골처럼 특정한 위기가 특정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순간도 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녀도 그것을 발휘할 조건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역사를 바꾸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다이아몬드의 실험에 의문도 없진 않다. 정치와 종교처럼 수많은 변수가 얽힌 역사에 자연실험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치에서 스포츠까지 성격이 전혀 다른 분야를 하나의 분석틀로 비교하다 보니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잘나가는 기업의 CEO에게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주고, 꼴찌 팀의 감독을 갈아치우며, 선거 때마다 한 명의 정치인이 나라를 구하거나 망칠 것처럼 말하는 우리의 습관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이아몬드의 답은 '리더가 역사를 만든다'도, '역사가 리더를 만든다'도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 그것을 발휘할 권한과 시대가 열어주는 기회, 때로는 행운까지 만날 때 한 사람의 영향력은 폭발적으로 커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위대한가'보다 '어떤 조건에서 한 사람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가'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