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만 두드리다 실기했던 삼성, M&A 자신감 붙었다
'안드로이드, 샌디스크, AMD, NXP'
삼성전자가 한때 인수를 검토했지만, 인수 기회를 놓친 후 기업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른 기업들이다. 그동안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삼성은 ‘돌다리를 너무 두드리느라 다리를 건너지 못해 인수합병(M&A) 기회를 놓치는 기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M&A 실적이 쌓이면서 과거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역대급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배당 재원이 생기자 삼성은 전 계열사가 전방위적으로 해외 선진 시장에서 M&A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 삼성물산은 5.11%, 삼성화재는 1.49%를 각각 보유하고 있어 삼성전자 배당에 따른 M&A 자금 여력이 풍부한 상태다. 한 삼성 관계자는 “자금이 풍부해져 과거에는 엄두도 못 낼 대규모 해외 M&A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내 30조원의 현금 배당을 시작으로 올해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 환원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약 30조원을 현금 배당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각각 2조5500억원, 4500억원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 M&A의 기조가 바뀐 또 다른 배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거론된다. 이 회장은 최근 주요 삼성 계열사를 대상으로 “글로벌 M&A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8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미국과 영국 현지 금융회사 인수와 지분 투자에 적극 나선 것도 이러한 그룹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인수가 성사된다면 역대 금융권 최대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딜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은 올해 삼성전자로부터 1조7600억원의 배당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7월 스위스 펩타이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M&A 가운데 최대 규모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06%를 보유한 대주주로 M&A를 위한 유상증자에 1조원 규모로 참여할 예정이다.

삼성은 M&A의 대가인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미국 KKR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 삼성SDS는 지난 4월 KKR을 대상으로 1조22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삼성SDS로는 27년 만의 첫 외부 자금 조달이고 삼성 계열사 중에선 PEF와의 첫 제휴다. 삼성SDS는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인프라 분야에서 투자 기회도 얻기로 했다. KKR은 6년 동안 삼성SDS에 M&A, 자본 활용 관련 자문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 6월에는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SDS가 암호화폐거래소 1위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 4%를 6128억원에 사들였다. 디지털자산·스테이블코인 등 신사업 확장을 노린 포석이었다.

삼성의 M&A 시도는 과거 수천억원 규모에서 수조원 규모로 서서히 확대되고 있다. 2010년 3300억원 규모인 초음파의료기기업체 메디슨, 2014년 2100억원 규모인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씽스, 2016년 2400억원 규모인 AI 플랫폼 기업 비브랩스 등 수천억원 단위 딜이 초창기에 많았다. 그러다 2016년 9조3000억원 규모인 하만 인수를 계기로 조 단위 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지난해 유럽 냉난방공조회사 플랙트그룹을 2조원대에 인수한 것은 IB업계에서도 성공적인 딜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계열사별로 해외 선진시장 M&A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내수 시장 비중이 높은 계열사는 해외로 일제히 눈을 돌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과거 지나치게 신중해 인수 실패 사례가 많았던 삼성이 오랜 기간 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최근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