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주곡에선 지휘자와 악단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민하게 의식합니다. 반면 솔로 리사이틀은 주변 환경을 차단하고 제 자신에게 집중하죠. 명상 같습니다.”
아래는 이번 공연 레퍼토리와 미리 들어보면 좋은 앨범들로, 하델리히가 직접 소개 글을 보내왔다.
연주곡: 텔레만 무반주 바이올린 환상곡 8번 ▷앨범: <Telemann: Twelve Fantasies for Solo Violin>(2009)
앨범 <Telemann: Twelve Fantasies for Solo Violin>(2009). /자료출처. 핫트랙스 홈페이지
“텔레만의 환상곡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위트로 가득 차 있는데 다소 갑작스럽게 멈추기도 합니다. 바흐 이전의 음악으로만 들을 수 있는 작품이죠. 당대 유명 인사이던 텔레만이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 자리를 거절한 덕분에 바흐가 그토록 바라던 그 감독 자리를 얻게 됐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앨범 <American Road Trip>(2024). /자료출처.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홈페이지연주곡: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앨범: <Flying Solo>(2009)
앨범 <Flying Solo>(2009). /자료출처. 핫트랙스 홈페이지
“퍼킨슨과 이자이 모두 즉흥연주로 탄생한 것으로 보이는 바이올린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퍼킨슨이 블루스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은 다소 덜 알려져 있지만, 제겐 즐거움을 줍니다. 양식적으로는 이자이가 블루스 음악을 들었으면 냈을 법한 소리 같아요. 이자이 소나타 5번은 웅장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영광스러운 빛에 이르기까지의 일출을 그리는데, 단 하나의 악기로 교향악을 완성한 듯해요. 5박자의 소박한 춤곡으로 된 2악장은 즉흥연주를 확장한 것처럼 들립니다.”
앨범 <Paganini: 24 Caprices>(2018). /자료출처.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홈페이지
“19번과 16번은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지만 파가니니의 유머와 기이함을 잘 보여줍니다. 19번이 직접적으로 재밌는 쪽이라면, 16번은 엉뚱한 악센트로 퍼킨슨의 블루스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죠.”
연주곡: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앨범: <바흐: 소나타 & 파르티타>(2021)
앨범 <Bach: Sonatas & Partitas>(2021). /자료출처.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홈페이지
“바흐의 파르티타 3개는 춤 모음곡입니다. 쇼팽의 무곡처럼 진짜 춤을 추려는 목적에 딱 맞는 곡은 아니에요. 그래도 연주자는 각 춤곡의 강박, 약박 패턴을 살려내며 운동에너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파르티타 2번의 하이라이트는 ‘샤콘느’죠. 하강하는 저음 선율 위에서 바흐는 우뚝 솟은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비통한 순간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성찰과 지복의 순간으로 인도합니다. 삶 자체를 관통하는 여정 같달까요. ‘샤콘느’가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곡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바흐는 1720년에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자필보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영인본을 살피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죠. 왜 바흐가 반주를 안 붙였는지 궁금해하기도 했어요. 그랬다면 더블 스톱(두 개 현을 동시에 울려 두 음을 내는 기법)으로 연주하지 않아도 돼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이 더 편해졌을 텐데요!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19세기엔 보통 피아노 반주와 함께 이 곡을 연주했어요. 슈만은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에 피아노 파트를 썼죠. 20세기에 바흐 작품 연주와 녹음이 보편화했을 땐 바로크 음악을 무겁고, 느리고, 엄숙하게 연주하곤 했습니다. 그가 남긴 풍부한 종교악 때문인지 바흐는 엄격한 종교적 은둔자로 그려지곤 했죠. ‘바흐는 웃지 않았다’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어요.
바흐의 음악엔 감정이 가득해요. 삶을 긍정하는 기쁨이 담겨 있죠. 그가 일군 대위법에 매몰되면 바흐의 음악이 학구적이거나 엄숙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우린 수백 년을 지나와 말을 건네는, 비범하면서도 겸손한 한 인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