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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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무너진 자리, 로봇과 반도체가 들어선다

한때 중국 도시의 성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은 아파트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이었습니다. 도시는 물론 근교까지 아파트 건설 붐이 유행병처럼 번졌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테크 수단으로 아파트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차오팡퇀(炒房团·부동산 투기단)’이라는 말까지 유행했습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였던 헝다그룹의 몰락은 그 시대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최근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중국 정부가 위험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일찍부터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동산 산업이 잘못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칠 파괴력을 예상하고 토지 공급을 통제하고 개발업체에 대한 금융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개발업체의 탐욕과 토지 매각 수입에 의존한 지방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브레이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집값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넘어 오버슈팅했고, 부동산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 속출하면서 아파트는 중국에서 일종의 신앙이 됐습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대도시 봉쇄와 이동 통제, 경기 위축에 금융 규제까지 겹치며 부동산시장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 몇 년간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중국 경제를 끌어올린 부동산이 이제는 소비와 지방재정, 금융을 동시에 짓누르는 골칫덩어리가 됐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정부의 대응입니다. 중국은 무너지는 부동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만 매달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장엔진 자체를 갈아 끼우는 중입니다. 부동산으로 흘러가던 자본과 인재, 정책적 지원을 첨단산업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집이 무너진 자리에 로봇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이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는 첨단산업과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성장엔진을 바꾸는 전략인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을 내걸고 반도체, 인공지능(AI), 로봇과 휴머노이드,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 바이오·첨단 의료, 우주항공, 양자 기술, 첨단소재 등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먹거리를 통째로 바꾸는 국가 차원의 산업 재편입니다.

한국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

문제는 중국이 새로 선택한 산업의 상당수가 한국의 주력산업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로봇 등이 대표적입니다. 중국은 기술과 가격, 생산 규모, 공급망, 사업화 속도까지 결합해 한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로봇 기업 유니트리, 배터리의 CATL·비야디(BYD)입니다. 최근 증시에 상장된 CXMT와 유니트리의 자본시장 진입 과정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첨단기술 기업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는 것을 보면 중국 자본시장이 자국 반도체와 로봇 기업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은 이제 첨단산업의 굴기를 정부 보조금만으로 추진하지 않고 자본시장을 통해 거대한 민간자금까지 기술 기업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중국식 첨단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의 성공이 한국에는 더 큰 위협일 수 있다

중국이 부동산·건설 중심으로 성장하던 시대에는 한국도 그 성장의 과실을 상당 부분 나눠 가질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아파트와 도로, 공장을 지을수록 한국의 철강·화학·기계·전자제품 수출에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AI와 로봇으로 성장하는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국 성장엔진의 교체는 중국만의 산업구조 변화가 아니라 한국의 산업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반내권(反內卷) 전략과 첨단 제조업 육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생산능력에 비해 내수가 따라오지 못하면 남은 제품은 해외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에서 시작된 가격 경쟁이 철강·석유화학·기계·전자제품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이제 중국 시장에서만 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3국 시장은 물론 안방에서도 중국 기업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가격으로 정면 대결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고성능·AI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첨단소재와 제조 장비처럼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분야에 자본과 인재를 집중해야 합니다. 모든 산업을 지키겠다는 전략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기술과 산업을 골라 집중하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연구개발에서 사업화와 대량생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단축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시장에 늦게 나오면 기술 우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연구실의 기술을 공장과 시장으로 옮기는 산업화 속도에서도 중국에 앞서야 합니다. 정부가 과도한 규제와 간섭을 풀고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할 분야가 적지 않습니다.

중국의 아파트 가격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 중국 경제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무너지는 중국이 아니라 성장엔진을 바꿔 다시 올라오는 중국입니다. 중국 경제의 진짜 변화와 한국 산업의 새로운 위기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 중국연달그룹 특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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