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시 "여러 지표, 인플레 향해 가"
매파 본색 드러내며 금리 올릴 듯
시장 안도…30년물 국채 안정세
'바이백' 베선트는 시장 영향 미미
“기조적인 물가 흐름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28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이같이 발언한 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전 Fed 의장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재닛 옐런 의장에게 불만을 드러내며 파월을 새 의장으로 임명했지만,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며 ‘투사’로 변해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했다.
◇시장 신뢰 얻은 워시
워시 의장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기자회견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금리를 올리지 않은 배경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Fed가 행정부에 휘둘리던 시절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번 잭슨홀 연설에서 워시 의장은 완전히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물가상승률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이 5년 반 동안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2% 수준까지 끌어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뚜렷이 밝혔다. 경제 현황에 관해서도 “PCE 등 여러 지표가 일제히 인플레이션을 향해 가고 있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비전통적인 수단을 쓰는 일을 자제하고 단기 금리를 조정하는 핵심 수단에 집중하겠다고도 했다. 연간 1조1000억달러에 달하는 이자 비용 부담에 시달리는 재무부를 위해 금리를 억지로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끊어낸 소신 발언이었다.
시장은 높은 점수를 줬다. 미국의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0.12%포인트 오른 반면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015%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수익률 곡선은 조금 평탄해졌다. 그의 매파적 정책이 단기 금리는 올리지만 결과적으로 물가를 잡고,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봤다는 뜻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워시 의장이 “7월 시험(FOMC)에서는 낙제했지만, 잭슨홀에서는 A를 받았다”고 표현했다. 마켓워치는 “워시는 모든 Fed 의장이 바라는 것을 얻었다. 채권시장이 그의 말을 믿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선트와는 대립각
이날 워시 의장의 발언은 재무부와 중앙은행 사이의 본격적인 갈등을 예고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최근 장기채 재매입을 결정하면서 “금리에 펀더멘털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무부는 시장에 금리가 너무 높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워시 의장은 현재 시장 상황이 “긴축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시장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베선트 장관은 7월 말 엔화를 매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반면 워시 의장은 통화정책 외 수단으로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워시 의장이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은 긴축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어 베선트 장관의 심기를 거스를 가능성이 높다.
시장은 워시 의장 쪽으로 기울었다. 베선트 장관의 장기채 재매입(바이백)은 금리를 끌어내리는 데 실패했다.
다만 7월 FOMC 후 거센 비판에 시달린 워시 의장이 이날 의도적으로 중앙은행 독립성을 강조했을 뿐 실제로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조관계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Fed가 9월 FOMC에서 즉각 금리를 올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간선거가 끝난 뒤 12월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