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 건수가 2022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중복상장 규제 이슈가 상반기 내내 이어진 데다 국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된 영향이다. 연내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둔 대어급 기업도 출격 시점을 내년 상반기로 미루고 있다.
◇연내 상장 위한 예심 청구 마감 임박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지난 3월 입성한 케이뱅크 한 곳에 불과하다. 거래소에서 상장예비심사를 받고 있는 소노인터내셔널, 에스에프씨, 에스텍시스템 등 세 곳이 연내 상장 절차를 마치더라도 올해 전체 상장 건수는 4건에 그친다. 추가로 연내 상장을 목표로 예심 청구를 준비하는 기업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사 기간과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 절차를 감안하면 8월 말이 연내 상장을 위한 예심 마지노선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물리적으로 9월 청구 후 12월 공모도 가능하지만 연말 기관투자가의 장부 마감(북클로징)이 겹쳐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 4건은 ‘단군 이래 최대 IPO’로 불린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여파로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은 2022년(4건)과 같은 최저치다. 당시 SK쉴더스, 컬리, 골프존카운티, 케이뱅크 등이 상장에 도전했다가 무산됐다. 올해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도전하는 기업 자체가 줄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건수는 2021년 14건에서 2022년 4건, 2023년 5건, 2024년과 2025년 각각 7건으로 소폭 회복세를 보였으나 올해 다시 급격히 위축됐다. 스팩과 리츠 상장 등을 제외한 수치다. 코스닥시장도 사정이 비슷해 올해 신규 상장은 26건에 머물렀다. 2024년(70건), 2025년(69건)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년 상반기 바라보는 유니콘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위축된 배경으로는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제정이 꼽힌다. 금융당국이 물적분할 후 재상장 등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대한 주주 보호 규제를 강화하자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던 대기업들이 IPO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중복상장 심사 시 주주 동의를 원칙적으로 권고하고, 물적분할 시 ‘3% 룰’에 따른 주주 동의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중복상장 이슈에서 자유로운 대어급 유니콘 기업도 연내 상장을 강행하기보다 내년을 도모하는 분위기다. 상장하지 않더라도 국민성장펀드 등에서 출자를 받을 수 있어서다.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 등으로 외형을 키우고, 신규 사업을 안착시켜 기업 가치를 충분히 끌어올린 뒤 상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유니콘 기업이 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과 AI 솔루션 기업 업스테이지는 올해 국민성장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클라우드 관리(MSP) 기업 메가존클라우드는 최근 8000억원 규모의 프리IPO를 마쳤다. K뷰티 브랜드 구다이글로벌과 친환경 선박 기자재 업체 SB선보는 M&A로 몸집을 키운 뒤 조직을 추스르고 있다. 한 유니콘 기업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원활한 자금 조달이 가능한 상장 시기를 따져보고 있다”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중 어떤 곳을 고를지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대어급 기업의 상장 예심 청구가 9월 이후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메가존클라우드, 무신사, 구다이글로벌,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등이 연내 예심 청구를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SB선보 등은 사업을 고도화한 뒤 내년 초 예심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