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한국전력 남서울본부에서 열린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한국전력 남서울본부에서 열린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영호남 지역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역별 전력가격제’ 도입을 공식 발표했다. 지방에 투자하는 기업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 첨단산업 육성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소매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비수도권 발전소에서 사들이는 전력 도매가격을 낮추기로 하자 비수도권에 발전소를 지은 민간 발전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본지 8월 14일자 A1,5면 참조

◇영호남 산업체 최대 18원 할인

영호남 산업 전기료 최대 10% 인하…민간발전사는 반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6일 한국전력 남서울본부에서 산업용 지역요금제와 도매시장 가격 차등제 도입 방안을 설명했다.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남부권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13~18원, 중부권은 10~15원, 수도권 북부는 6~10원 깎아주고 수도권 남부는 0~1원만 인하해 지역 간 가격 격차를 두는 게 핵심이다.

지역별 할인에 필요한 2조8000억원 규모 재원은 한전이 발전소에서 사들이는 도매가격을 차등해 마련한다. 송전선로에 과부하(송전혼잡)가 발생할 경우 전력이 남아도는 비수도권 도매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한전의 전력 구입비를 줄이고, 절감분을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재원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천현민 한전 요금전략처장은 “수도권 전력 수요의 약 40%를 비수도권에서 끌어오면서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비와 주민 갈등 등 사회적 비용이 한계에 달했다”며 “전력 다소비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공청회를 열기에 앞서 지역별 가격제 도입에 반발하는 민간 발전사만 따로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제도 시행 과정에서 이들의 반발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자 사전 진화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삼성, SK 등 주요 그룹사와도 개별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21개 경제·산업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전기요금은 기업의 생산·투자활동과 직결된다”며 산업용 지역요금제를 연내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발전업계 “정부 믿고 투자했는데…”

민간 발전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이 송전망을 제때 확충하지 못해 지방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지 못하는 책임을 발전사에 전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애초 강원 동해안 민간 석탄발전소는 지방에서 소비할 전기를 생산하려고 지은 게 아니다”며 “초고압 송전망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으로 전력을 직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설비”라고 말했다.

발전업계는 과거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발전소를 건설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시 정부 정책과 평가 기준을 믿고 비수도권에 발전소를 지었는데 이제 와서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도매가격을 깎는 건 신뢰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가격 인하로 발전소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면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도매가격 하락이 발전사에 대한 불이익이 아니라 시장 원리에 따른 정상화라고 주장한다. 정부 관계자는 “비수도권 도매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전력 과잉 공급 지역의 가격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것”이라며 “진작 떨어졌어야 할 비수도권 전력가격을 그동안 전국 단일 가격 제도가 억지로 떠받쳐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가격 차등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기존 발전사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역별 가격제를 통해 가격 신호를 확립하는 방향은 불가피하지만 기존 비수도권 발전사에 대한 실효성 있는 경과 조치와 손실 보완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