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신논현역 인근 ‘LP바 제플린’. 벽면을 가득 채운 음반 사이로 서태지와 아이들, 머라이어 케리 음악이 흘러나왔다. 직장에서 상무 승진을 앞두고 있다는 1976년생 김모씨는 신청곡 쪽지를 손에 쥔 채 “고1 수학여행 내내 들은 ‘난 알아요’를 듣고 싶다”며 DJ에게 신청곡 쪽지를 건넸다. 셔츠 차림을 한 직장인들은 음악이 시작되자 일제히 몸을 흔드는 등 호응에 나섰다.

영국 유명 밴드 매시브어택은 1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한국어로 불렀다.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는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삽입됐다.

X세대 대중문화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한류 열풍을 계기로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트레이키즈, 송가인
스트레이키즈, 송가인

◇ 한국 대중문화 문법 바꾼 X세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붙은 X세대는 문민화와 세계화가 맞물린 1990년대 당시 개성과 새로움의 상징이었다. X세대의 선택이 지금의 대중문화 산업 문법도 바꿨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는 K팝의 음악적 토대가 됐다. 양현석(1970년생), 박진영(1971년생), 방시혁(1972년생) 등은 이후 글로벌 K팝 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최근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시대유감과 S.E.S의 ‘dreams come true’를 다시 부르고 앳하트가 룰라의 ‘3!4!’를 리메이크하는 등 당시 음악은 지금도 새로운 세대의 콘텐츠로 변주되고 있다. 일부 가수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듀스는 지난해 30년 만의 신곡 ‘라이즈’를 발표했다. 2인조 멤버 중 작고한 김성재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되살린 결과물이다. 매시브어택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K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며 X세대 대중가요에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7월 K팝을 주제로 한 온라인 강좌를 개설하며 서태지를 별도 커리큘럼으로 다뤘다.

영화시장에서도 1970년대생은 핵심 관객이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인 강변 CGV가 문을 연 1998년 이들은 19~28세였다. 이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의 흥행을 이끌며 국내 영화 관객이 1998년 약 5000만 명에서 2002년 1억 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데 힘을 보탰다.

패션에서는 마리떼프랑소와저버, 게스, 폴로 등 수입 브랜드를 받아들이며 옷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소비문화를 확산했다. ‘저버 청바지’로 인기를 끈 마리떼프랑소와저버는 2019년 국내에 재출시된 뒤 지난해 매출 1507억원을 기록했다.

◇ 오프라인 문화행사 관람률 급감

X세대 취향이 문화산업 전반에 남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 자체가 오늘날 뚜렷한 문화 소비 세대로 호명되지 않고 있다. 소비 여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25일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4년 45~49세의 전체 카드 소비액은 31.1%, 온라인 소비액은 84.7%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문화 소비는 18.1%, 여행 소비는 11.0% 감소했다. 50~54세도 전체 소비는 51.1%, 온라인 소비는 119.2% 늘었지만 문화 소비 증가율은 8.3%에 그쳤고 여행 소비는 3.7% 줄었다.

오프라인 문화행사와의 거리도 벌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 40대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76.5%에서 69.4%로 7.1%포인트 하락해 전 연령대 중 낙폭이 가장 컸다. 문화·여가 욕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체부 조사에서 40대의 평일 하루 여가 시간은 3.3시간이었지만 희망 시간은 4.1시간이었고, 50대 역시 실제 3.5시간보다 0.7시간 많은 4.2시간의 여가 활동을 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존 시장이 70년대생의 문화 욕구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