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줄어드는 폭스바겐 공장 /한경DB
일자리 줄어드는 폭스바겐 공장 /한경DB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이자 독일이 자랑하는 폭스바겐그룹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 자동차의 급성장, 자율주행 등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도 내연기관 엔진에 안주하다가 시가총액이 10년 만에 반토막으로 쪼그라들어서다.

25일 글로벌 주가 정보업체 컴퍼니스마켓캡에 따르면 폭스바겐, 벤츠, BMW 등 독일 완성차 3사의 합산 시총은 2015년 말 2358억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말 1305억달러로 44.7% 급감했다. 이들은 2015년 도요타에 이어 글로벌 시총 2·3·4위를 싹쓸이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에는 7위(벤츠·473억달러), 8위(폭스바겐·424억달러), 9위(BMW·408억달러)로 밀려났다. 3사의 합산 시총은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 1162억달러)과 비슷하다. 이들의 시가총액 합은 중국 비야디(BYD)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디젤 게이트부터 몰락

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BMW…독일차 엔진이 식어간다
독일 차가 무너진 건 중국 전기차 시대에도 전통 기술에만 의존해 급변하는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년 ‘디젤게이트’로 디젤 엔진의 신뢰가 무너진 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예측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전기차 올인을 선언했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잇는 징검다리인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외면한 것도 치명타였다. 수출 물량의 절반가량을 중국에 의존하며 판매 거점을 다변화하지 않은 점 역시 패착 요인으로 꼽힌다.

몰락의 표면적인 원인은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이다. 폭스바겐그룹은 그동안 실적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올렸다. 하지만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269만3800대로 역대 최대인 2019년(423만3600대)과 비교해 36.4% 급감했다. 올 상반기 판매도 전년 동기(131만4000대) 대비 26% 급감한 97만3000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BMW(26만2000대)와 메르세데스벤츠(21만 대)도 각각 17.6%, 28.3% 줄었다. 광물 채굴부터 배터리셀 제조, 완성차 조립까지 전 과정을 내재화한 중국 메이커가 저가 전기차를 쏟아내며 내수 시장을 휩쓴 결과다.

폭스바겐은 2019년 수출 물량(961만 대)의 44%가 중국에 몰릴 정도로 의존도가 심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벤츠와 BMW도 비슷한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전기차 캐즘 오판에 발목

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BMW…독일차 엔진이 식어간다
독일 자동차 3인방 몰락의 시작은 2015년 디젤게이트다. 디젤 엔진의 환경오염 파문으로 신뢰가 무너지자 유럽 내 디젤차 점유율은 2015년 52%에서 2024년 13.6% 밑으로 추락했다. 디젤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했던 이들의 장점이 사라진 것이다. 주요 도시의 디젤차 운행 제한까지 확산하면서 폭스바겐이 벌금과 배상금으로 지출한 돈만 300억유로(약 49조원)를 넘었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도 실패했다. 디젤 사태 이후 독일 자동차 기업은 2017~2019년 앞다퉈 전기차 올인을 선언했다. 하지만 전기차 기술력이 부족한 데다 충전 인프라 미비 등으로 2023~2025년 캐즘에 직면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사이 하이브리드카 라인업을 구축해둔 현대자동차그룹과 도요타가 반사이익을 얻으며 수요를 흡수했다. 올해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7월 기준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했는데, 하이브리드카 판매가 4만3727대로 전년 대비 52.2% 급증했다.

디젤게이트를 거치며 독일 업체들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개발의 주도권을 모두 놓쳤다는 의미다. 벤츠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반토막 났고, 폭스바겐은 5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 BMW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4% 감소했다.

문제는 미래가 더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모빌리티 산업의 전장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유럽 업체 중 이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없다. 폭스바겐은 2020년 소프트웨어 조직 ‘카리아드’를 세우고 SDV 개발을 위해 엔지니어 6000명을 투입했지만, 엔진 등 기존 하드웨어 중심 사고방식에 발목 잡혀 프로젝트가 수년씩 밀렸다. 독자 개발에 실패한 폭스바겐은 결국 중국 샤오펑 등에 기술을 의존하고 있다.

김우섭/양길성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