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튀르키예의 마트 식품 매장은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기분이 든다. 기름진 땅에 날씨도 좋아 농축수산물의 생산량과 질이 모두 풍부하다. 햇볕 듬뿍 받고 자란 다디단 과일과 진한 맛의 채소도 좋고,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헤이즐넛과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 맛도 굉장하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홍찻잎이 산지별로 분류되어 차곡차곡 정렬한 모습도 장관이다. 빵과 디저트도 산처럼 쌓여있고, 올리브오일도 어찌나 맛 좋고 저렴한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부럽다, 부러워. 마음 같아선 귀국길에 가방 가득 채워 가고 싶다.
무엇보다 튀르키예는 유제품의 질이 좋다. 가장 기본인 흰 우유를 한 모금만 마셔봐도 어라, 하며 놀라게 된다. 우리의 것과 비교하자면 좀 더 야성적인 맛이랄까. 그러니 버터와 치즈, 요거트 등도 모두 진한 맛이 날 수밖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버터인데, 포장이 워낙 독특하다. 세로로 길게 자른 버터 덩어리의 아래쪽 1/3은 둥근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고, 나머지 윗부분은 진한 노란빛 몸체를 노출한 채 투명한 뚜껑을 가볍게 덮어놓았다.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똑 닮았다. 이렇게 포장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금방 먹을 거라 칼로 숭덩숭덩 썰기 좋게 한 거라나. 자그마한 버터 한 팩을 일 년 가까이 지나도록 다 먹지 못하는 나로선 놀랄 뿐이다.
그런데 진짜 쟁점은 따로 있다. 요거트다. 이 세 나라, 일명 요거트 3국은 누가 요거트의 원조이냐는 문제에 무척 예민하다. 나는 어렸을 적에 보았던 모 요거트 브랜드 광고로 인해 불가리아가 원조일 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했다가, 어른이 되어선 그릭 요거트가 워낙 널리 알려졌으니 그리스가 진짜 원조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얘길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했다가 크게 혼난 이후론 되도록 이 주제는 회피하는 중이다.
요우르트는 걸쭉하고, 진하고, 새큼하고, 단맛은 전혀 없다. 우리가 아는 플레인 요거트 맛이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필요한 만큼 물기를 빼서 먹기도 하는데, 그렇게 만든걸 쉬즈메(süzme) 요우르트라고 한다. 옛날엔 면 보자기에 요거트를 가득 담아 부엌 싱크대 수도꼭지에 매달아선 밤새도록 물기를 뺐다는데, 이젠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쉬즈메는 튀르키예 요리에 가장 널리 쓰이는 형태다.
좀 더 묵직하고 고소한 카이마클르(Kaymaklı) 요우르트도 매력 있다. 뚜껑을 열어보면 윗면에 지방층이 껍질처럼 덮여있다. 이건 요리에 쓰기보단 꿀과 잼, 과일, 견과류 등을 얹어 후식으로 즐기기 좋다. 한편 라브네(Labneh)도 꼭 맛봐야 하는데, 요우르트의 물기를 쪽 빼고 간해서 좀 더 숙성한 거라 엄밀히 말하면 치즈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치즈처럼 발효취가 강하진 않아, 눈 감고 먹으면 간이 간간이 밴 요거트 같다. 빵에 두껍게 발라먹으면 정말 맛있다. 기본 요우르트와 쉬즈메, 카이마클르, 라브네, 이 네 가지는 튀르키예를 여행할 땐 하나씩 사서 비교해 보자. 똑같은 우유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유제품이 파생된다니 감탄스럽다.
특히 튀르키예의 가장 흔한 아침 식사 메뉴인 뵤렉과 아이란의 궁합은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기름지고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크게 베어 물고 새큼 짭짤한 아이란을 마시면 버터 향기는 더욱 강해지고 느끼한 맛은 사르르 사라진다. 전체적인 간도 딱 맞는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지? 오두방정 떨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삭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모든 테이블에 아이란이 놓여있다.
그렇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아이란을 정말 좋아한다. 얇고 넓적한 밀전병 같은 빵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두룸 케밥이든, 즉석에서 굽거나 쪄서 소금을 술술 뿌려주는 노점의 샛노란 옥수수든, 항구에 배를 정박해 놓고 고등어를 구워 에크멕 빵에 끼워주는 고등어 케밥이든, 뭘 먹든지 아이란은 기본이다. 보통은 대량 생산된 걸 주지만, 직접 만드는 식당도 있다. 주인의 손맛에 따라 농도도 염도도 조금씩 달라서 은근히 기대된다. 물 대신 탄산수를 섞은 아이란도 독특하다.
25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여행과 음식을 몹시 좋아한다. 마흔 살에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고 떠난 긴 여행을 계기로, 일 년에 한두 차례 혼자 여러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이다. 책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시리즈와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나이 드는 몸 돌보는 법>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