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자산가격 폭등·폭락 되풀이
올해 코스피 흐름도 비슷한 특징 보여
"비관서 출발한 강세장, 극도의 행복서 끝나"
사상 처음으로 9000을 돌파한 코스피지수가 불과 한 달여 만에 5000대로 내려앉았다. 이후 6000선을 회복하고 7000에 근접했지만, 등락을 거듭하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놀랍지만 낯선 풍경은 아니다. 17세기 튤립 파동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산 가격, 특히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가 거품이 터지듯 주저앉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과정을 설명한 여러 이론이 있다.
◇로또 미인대회와 합리적 거품
과도한 하락은 과도한 상승의 끝에 찾아온다.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이유를 경제학자들은 주로 인간의 심리에서 찾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주식시장을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1930년대 영국 신문에는 ‘미인 사진 뽑기 대회’가 있었는데, 규칙이 로또와 비슷했다. 100명의 사진을 보고 그중 6명에게 투표하는데, 표를 가장 많이 받은 6명을 가장 근접하게 맞힌 사람이 경품을 받게 돼 있었다.
이런 규칙 아래에서 경품을 받으려면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한다.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는 ‘남들이 사는 종목’을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매수세가 몰려 주가가 지나치게 오르는 일이 생긴다.
전설적 헤지펀드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시장의 쏠림 현상을 ‘재귀성’으로 설명했다. 어느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그 기업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확산하고, 그런 기대가 주가를 더욱 밀어 올리며,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재귀성은 주가가 내릴 때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시장의 거품이 꼭 비합리적 행동의 결과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해도 거품이 생길 수 있다고 보는 ‘합리적 거품 이론’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이 이 이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자산 가격에 거품이 있더라도 투자자가 상당 기간 거품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매수한다면 합리적 행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빚을 갚을수록 가난해지는 역설
강세장의 배경이 무엇이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한없이 잘나갈 것 같던 기업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경기 과열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장 분위기가 바뀐다. 하이먼 민스키는 오랜 호황이 역설적으로 시장의 불안정성을 잉태한다고 봤다. 시장에 낙관적 기대가 만연해지면 무리하게 빚을 내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어느 순간 가격이 꺾일 조짐을 보이면 투자자는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자산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내린다는 것이다. 러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채권 운용사 핌코의 펀드매니저 폴 매컬리는 시장이 정점을 지나 투자자의 탐욕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을 ‘민스키 모멘트’라고 불렀다.
어빙 피셔는 미국 대공황 경험을 토대로 하락장에서 투자자가 ‘빚을 갚을수록 가난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부채를 동원해 투자한 경우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자산은 줄어드는데 부채는 그대로 남는다. 부채를 갚으려고 너도나도 자산을 파는 바람에 가격이 더 크게 하락하고, 자산은 더 줄어든다.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채의 실질 부담이 커진다. 결국 빚을 갚으려고 할수록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지금 시장의 위치는 어디?
찰스 킨들버거는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금융위기가 변위(새로운 투자 기회)→호황→광기→위기→공황의 단계를 거친다고 이론화했다. 최근 코스피지수의 급등과 급락은 역사 속 무수한 거품 붕괴 사례와 일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주가 상승이 시장에 낙관론을 확산시켰고, 그렇게 퍼진 기대가 주가 상승 폭을 키웠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빚투도 크게 늘었다. 그러다 시장 주도주 역할을 하던 일부 기업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 등이 겹치자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전설적 투자자 존 템플턴은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성장하며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극도의 행복 속에서 죽는다”고 말했다. 지금 시장은 행복의 끝일까, 비관의 시작일까. 시장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탐욕과 공포의 교차점에서 인간이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해 왔다는 사실만큼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