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경영 오지랖] '양자화'에서 얻는 리더의 교훈
몸을 쓰는 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이든, 머리를 쓰는 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이든 나이가 들수록 ‘정교함’이 떨어진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노화가 그 원인이다. 운동신경과 반응속도도 예전 같지 않고, 암기력은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메모를 많이 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생기기도 한다.

중요한 판단만 남기는 '양자화'

그런데 많은 경우 이렇게 나이든 사람이 조직에서 리더 자리에 앉아 있다. 단순히 젊은 날에 열심히 일했던 보상일까? 그렇게 한가하게 보상이나 해주기 위해 높은 연봉을 주고 온갖 처우를 해주는 기업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런 기업이 있다면 ‘망조’가 든 기업일터다. 암기력도 떨어지고 순발력도 떨어진 이들에게는 다행히도 많은 경험이 있다. 물론 그 경험은 ‘내가 경험한 것만이 전부고, 내가 그때 선택해 성공했으니 나만 옳다’라는 아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공의 함정’에 빠진 ‘꼰대’가 대부분 이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나이든 리더에게서 ‘지혜’를 본다. 아집에 빠진 리더와 지혜로워진 리더.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챗GPT
챗GPT
필자가 운영진으로 있는 한 커뮤니티에 개발자 한 분이 자신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꺼낸, 지극히 개발자스러운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양자화’다. 양자화란 거대한 모델을 가볍게 만들 때 쓰는 방법으로 세밀하던 숫자들을 성큼성큼 큰 단위로 뭉뚱그리는 작업을 의미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정밀도를 낮췄는데도 모델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더 가볍고 빠르게, 진짜 중요한 판단만 또렷하게 내놓는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미세함을 덜어낸 자리에 핵심만 남는 원리다.

리더의 가치, 세밀함보다 '판단력'

임원들은, 리더들은 자신보다 위에서 지시하는 최고위 경영진과의 미팅을 마치고 오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직원들을 불러모은다. ‘이런 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큰 틀에서, 다른 관점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으니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면 분명 ‘양자화’가 잘된 고위 임원·경영진을 만나고 온 것일 터다. 그런데 ‘소소하게 이 수치가 맞니 틀리니(분명 근거를 달아줬음에도) 따지고 이 표현이 너무 위험하니 톤다운 하라’는 등의 세밀한 지시사항이 빨간 글씨로 잔뜩 적힌 보고서를 들고 내려왔다면, 몸과 머리는 낡았으되 양자화는 안된, 그래서 그저 습관적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 마나한 트집을 잡고 지시를 하는 최고위 임원·리더가 그 위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능하면 도망치는 게 나은 상황이다. 배울 게 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이제 리더들에게 묻는다. 이제 다소 떨어진 암기력과 순발력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내가 가장 뛰어나서 이 자리에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제 정교하고 세밀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고위직일수록 그렇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아랫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물러나는 게 옳다. 단, 비록 머리와 몸은 좀 낡았지만 양자화에 성공해 더 가볍고 빠르게, 진짜 중요한 판단만 또렷하게 내세우는 리더가 되었는가. 필요 없던 미세함을 덜어내고 핵심을 짚을 줄 알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그 조직과 세상을 위해 좀 더 일해달라. 세상에 몇 없는 ‘지혜로운 리더’가 바로 당신이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