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자정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 본점에 독자 50여 명이 모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작 <영원한 기억>이 출간되는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신작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지만 히가시노가 지난달 23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추모하는 성격을 띠게 됐다. 한 독자는 “작가의 생각과 열정은 작품 속에 계속 살아 숨 쉴 것”이라며 “한 자, 한 자 음미하며 읽고 싶다”고 했다.

국내외서 히가시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치밀한 추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함께 밀고 간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이었다. <악의>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고 상당수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으며 일본 내 저서 누적 발행 부수는 1억 부가 넘는다.

최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모은 특별 매대가 마련됐다. 이곳에 놓인 많은 작품 가운데 국내 독자에게 가장 최근에 도착한 소설이 <투명한 나선>이다. 공교롭게도 히가시노가 세상을 떠난 지난달 국내에 출간됐다. 일본에서는 2021년 발표된 작품으로, 교보문고 출판 브랜드 북다가 약 5년 만에 번역 출간했다. 추모 열기가 더해지면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투명한 나선>은 히가시노의 대표 연작인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다. 갈릴레오는 히가시노의 여러 작품군 가운데서도 특히 큰 사랑을 받은 시리즈다. 1996년 일본에서 연재를 시작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을 비롯해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한여름의 방정식> <침묵의 퍼레이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중심 인물은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다.
지난 2006년 1월 도쿄회관에서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이 정해져 기자회견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연합뉴스
지난 2006년 1월 도쿄회관에서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이 정해져 기자회견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연합뉴스
<투명한 나선>은 도쿄 인근 지바현 바다에서 총에 맞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숨진 남성과 함께 살던 여성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형사 구사나기는 그의 행방을 추적하던 중 오랜 친구기도 한 유카와가 뜻밖의 방식으로 사건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처럼 수사가 이뤄지면서 여러 인물들이 감춰온 과거와 관계가 하나씩 드러난다. 독자들은 누군가를 지키려 했던 한 인물의 선택이 사건의 배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가시노 특유의 설계와 반전이 여전한 작품이다. 사건과 인물들의 가족사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초반에 파악된 단서가 뒤로 갈수록 의미를 달리한다.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 복선을 확인하게 만드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가 크다. 혈연과 양육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팬이라면 사건 못지않게 유카와의 이야기도 눈길이 간다. 그동안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부모와 출생 배경이 이번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히가시노의 대표 시리즈는 갈릴레오만이 아니다.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는 ‘가가 형사’ 시리즈도 있다. <졸업> <악의> <붉은 손가락> <신참자> <기린의 날개>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유카와가 판독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규명한다면, 가가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세밀하게 살피며 범죄 뒤에 숨은 동기와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인물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답게 시리즈물 외에도 알려진 작품이 많다. <방황하는 칼날>에선 피해자의 입장에서 법의 한계에 대해 물었고, <편지>에선 살인범의 가족에게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낙인을 다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미스터리와 판타지 장르를 결합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후회를 연결했다. 이 작품은 특히 한국에서 수년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며 누적 100만 부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그의 마지막 완성작 <영원한 기억>은 갈릴레오 시리즈다. 시리즈 11번째 작품이자 공저를 제외하면 히가시노의 106번째 저서다.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형사 우쓰미가 70대 남성에게 습격당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범인은 직후 투신을 시도하지만 살아남았고, 경찰 조사에서도 입을 다문다. 유카와와 구사나기는 그의 소지품을 단서로 사건을 추적한다. 이 작품엔 '갈릴레오, 마지막 수수께끼'라는 부제가 붙었다.

국내에서도 <영원한 기억>이 조만간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교보문고 출판 브랜드 북다는 히가시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국내 판권 계약을 마쳤다. 당시에는 새로운 갈릴레오 작품을 계약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작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결과적으로 유작을 국내에 소개하게 됐다. 출간 시기와 번역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북다 관계자는 “통상 계약부터 출간까지 1년이 걸리는데, 앞당겨 출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