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대 ‘베리타스 강좌1: 공존_환경, 사회 그리고 소통’ 수업에서 학생들이 토론에 앞서 외국인 초청 연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서울대 제공
지난 5월 서울대 ‘베리타스 강좌1: 공존_환경, 사회 그리고 소통’ 수업에서 학생들이 토론에 앞서 외국인 초청 연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서울대 제공
‘인간에게 좋은 죽음은 어떤 모습인가.’

서울대에 개설된 ‘현대의학과 종교의 대화’ 강의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치유를 구하는 의식부터 의학이 어떻게 종교에서 분리됐는지, 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인간은 왜 다시 전인적 치유를 원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강의는 하나지만 교수는 두 명이다. 김진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와 손은실 종교학과 교수가 의학적 현상과 인문학적 해석을 주고받는다. 학생들은 ‘현대 의학은 기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놓고 토론하고, 임종을 앞둔 상황을 가정해 유서를 쓰기도 한다.

◇칸막이 넘어선 ‘교육 실험’

서울대가 AI 시대 사는 법…"모든 경계를 허물어라"
전문지식만으로 인공지능(AI)을 뛰어넘기 어려워진 시대에 서울대가 학문 간 칸막이를 허무는 교육·연구 혁신에 나섰다. AI가 지식을 빠르게 제공하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개별 전공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대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서로 다른 학문의 시각을 결합해 복합적인 문제를 풀고, AI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키우는 데 방점이 찍혔다.

11일 서울대에 따르면 현대의학과 종교의 대화처럼 서로 다른 전공 교수가 함께 수업하는 융합 교과목은 60여 개다. ‘베리타스 강좌’로 불리는 이들 수업은 지난해부터 공통교육과정에 포함됐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교수들이 전공의 경계를 넘어 공동 강의에 나선 것이다. 전국 국립대에서 수업 방식을 문의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노유선 학부대학 학장은 “대학이 특정 분야의 지식만 전수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후위기 같은 현상을 경제학자와 기상학자, 인류학자의 시각을 결합해 바라보는 종합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AI 시대 대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그랜드퀘스트’는 AI가 수많은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에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당장 답을 얻지 못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인류와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자는 것이다. 지난 3월 한 달간 학내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모에는 2143개의 질문이 접수됐다. 절반 이상을 학부생이 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그랜드퀘스트는 단순한 연구 프로젝트가 아니라 신입생 때부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해보자는 것”이라며 “이런 경험이 쌓여야 훌륭한 연구자가 길러진다”고 말했다.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등 서울대 석학 18명은 합숙 토론을 거쳐 6개 질문을 최종 연구 의제로 선정했다. ‘AI 시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AI는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 등이 포함됐다.

◇대학, 기술 혁신의 플랫폼으로

서울대는 교육뿐 아니라 연구 방식도 바꾸고 있다. 산업계와 동떨어진 연구기관에서 벗어나 기업과 대학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는 혁신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엔비디아와 공동 AI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서울대를 중심으로 거점국립대에 공동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우수 연구진을 기업과 공유하는 시도에 나섰다. 최근 딥러닝을 연구하는 한보형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에게 1년 중 절반은 서울대에서, 나머지 절반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형태의 겸직을 처음 허용했다.

AI발 대학 혁신 과정에서 ‘종합대학’이라는 것은 서울대의 강점으로 꼽힌다. 기술 중심 시대에는 특성화 대학의 경쟁력이 부각됐지만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 교육과 복합 연구가 중요해진 AI 시대에는 종합대학의 장점이 커지고 있어서다. 엔비디아가 서울대를 피지컬 AI 협력 대상으로 선택한 배경에도 공학뿐 아니라 의료와 자연과학 등 관련 분야를 두루 갖춘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재연/최영총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