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SK스퀘어 수석부회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승범 SK하이닉스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지난 10일 미국 뉴욕에서 SK하이닉스의 ADR 거래 개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재원 SK스퀘어 수석부회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승범 SK하이닉스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지난 10일 미국 뉴욕에서 SK하이닉스의 ADR 거래 개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5년 전엔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젠 그 꿈이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 10일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의 나스닥시장 상장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답이다. 2012년 SK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할 땐 한국 시장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의심받았지만 SK하이닉스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초특급 대우’를 받는 기업이 됐다. 나스닥시장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를 크게 웃돌며 13% 급등해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최 회장은 CNBC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 및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히 SK하이닉스 나스닥시장 상장의 기쁨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SK하이닉스의 미래 화두를 던지고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반도체 비즈니스 개념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최태원 "맞춤형 칩 키울 것…액면분할도 검토하겠다"

◇‘서비스형 메모리’ 모델 제시

최 회장은 이날 ‘서비스형 메모리(MaaS)’ 모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메모리를 만들어 놨으니 가져다 쓰라’는 식의 기존 방식이 아니라 고객 시스템에 맞게 메모리 구조를 최적화해 조율하는 서비스 형태로 납품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획일화된 표준에 맞춰 대량 생산하는 방식의 D램 시장을 철저히 고객 주문형인 ‘맞춤형 칩’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메모리 반도체도 휴머노이드, PC, 자율주행 등 쓰임에 따라 다변화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구독형 메모리 사업을 시사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구글과 아마존이 데이터센터를 건립해 정보기술(IT) 기업에 서버를 임대하는 것처럼 거대한 메모리 센터를 구축해 고객사들이 필요할 때마다 메모리를 빌려주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SK그룹 전체가 AI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그는 “SK하이닉스 외에 (그룹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이고 피지컬 AI 영역도 들여다보고 있다”며 “우리가 보유한 메모리 칩과 인프라 사업 간 거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제가 그리는 미래 사업의 지도”라고 강조했다.

◇“스톡옵션으로 해외 인재 유치”

최 회장은 AI 관련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SK그룹은 미국 시장에 350억달러(약 45조원) 이상을 투자해 왔는데, 제가 계획하는 미래 투자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라고 못 박았다. 또 최 회장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각의 ‘AI 버블론’에 대해선 “현재 AI는 겨우 4~5세 어린아이 수준이며, 범용인공지능(AGI)으로 진화할수록 메모리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과거와 같은 공급 과잉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 확실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나스닥시장 상장을 통해 SK하이닉스의 질적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도 드러냈다. 최 회장은 “ADR 상장은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데 훌륭한 카드가 된다”며 “스톡옵션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세계 핵심 인재를 끌어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내 증시에서 SK하이닉스의 액면분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시장에선 주당 가격(10일 종가 기준 218만원)이 지나치게 비싸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액면분할을 통해 거래 유동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 회장은 “아직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제안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요청이 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액면분할 단행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현지 자산운용사인 프로셰어즈, 렉스셰어즈 등은 SK하이닉스 ADR 수익률의 두 배 이상을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세계 반도체 주가 풍향계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편입 가능성 또한 제기된다. 지수 편입이 가시화하면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강해령/김채연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