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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침략 당한 흔적 위에 황금빛 문화 덧칠한 시칠리아
'지중해의 가장 큰 보석' 伊 시칠리아 섬
그리스·스페인·아랍에 수차례 정복
비잔틴·로마 결합한 노르만 궁전 등
침략 흔적 지우는 대신 문화 융합시켜
그리스·스페인·아랍에 수차례 정복
비잔틴·로마 결합한 노르만 궁전 등
침략 흔적 지우는 대신 문화 융합시켜
무질서가 아닌 ‘융합’의 미학
인파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영화 ‘대부 3’의 촬영지로 유명한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 빈 오페라 하우스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이 오페라 극장은 그리스 코린트식 기둥으로 세워진 웅장한 외관이 압도적이다. 내부에 들어서 고개를 들면 붉은빛과 금빛으로 찬란한 천장, 그리고 벽화 ‘음악의 승리’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벽면을 장식한 무라노 유리 샹들리에는 객석마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시칠리아 미학의 압축판이라고 불리는 ‘노르만 궁전’ 역시 중후한 위용을 자랑한다. 군더더기 없는 아치로 둘러싸인 단정한 르네상스풍 마케다 중정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루지에로 방’에서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황금빛 모자이크가 쏟아진다. 궁전 내부의 ‘팔라티나 예배당’은 9세기 아랍 궁전 자리에 12세기 노르만 왕조가 다시 세운 밀도 높은 공간이다. 아랍풍 잔재 위로 중세의 엄격함이 덮인 역사적 사실과 시각적 요소가 연결될 때 도시의 정신 없는 혼재는 오히려 ‘융합’의 감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2000년 전 장인과의 조우
팔레르모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도시인 몬레알레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벽면이 성서 이야기로 빼곡한 이곳의 대성당 내부 역시 황금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다. 클로이스터는 쌍을 이룬 얇은 기둥이 늘어서서 회랑을 이룬다. 아랍식 기둥은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고, 기둥머리에는 동물·꽃·식물이 새겨져 있다. 정원을 둘러싼 회랑을 천천히 걷다 보면 시칠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혼재를 읽어내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표범(Il Gattopardo)>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꼽힌다.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자신의 증조부를 주인공의 모델로 삼아 1860년대 이탈리아 통일 시기에 몰락하는 귀족의 이야기를 썼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 소설의 역설은 인공지능(AI)이라는 새 문명을 만난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야만 살아남는 시대다. 수천 년의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시칠리아의 모자이크 조각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기록하는 오늘은 수천 년 뒤 어떤 이야기로 남게 될까.
시칠리아=박은새 디렉터(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