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양식으로 설계한 ‘팔레르모 대성당’.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당한 만큼 다양한 문화의 층위를 쌓아온 지역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르만 양식으로 설계한 ‘팔레르모 대성당’.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당한 만큼 다양한 문화의 층위를 쌓아온 지역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중해 한복판에 있는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가가 탐낸 요충지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스페인 등 새로운 승자들이 앞다퉈 이 섬을 점령했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정복자들이 앞선 시대의 흔적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대를 거듭하며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문명들은 역설적이게도 시칠리아만의 고유한 미학을 완성했다. 수많은 침략과 재난을 묵묵히 견뎌낸 이 섬에는, 문명의 흔적을 좇는 여행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인류의 서사가 스며 있다.

무질서가 아닌 ‘융합’의 미학

황금빛 모자이크가 특징인 팔레르모 대성당 천장. /ⓒ박은새
황금빛 모자이크가 특징인 팔레르모 대성당 천장. /ⓒ박은새
주도(州都)인 팔레르모는 제주도 14배 크기에 달하는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의 심장이다. 중심 거리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괴테가 왜 “거리를 대충 파악하는 것은 쉬우나 완전히 정통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라고 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신호를 무시한 채 과속으로 달리는 차들, 슬럼화된 복잡한 구시가지 곳곳에 펄럭이는 빨래가 자아내는 번잡함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 메인 도로 4개가 만나는 사거리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가 등장한다. 영화와 드라마 배경으로 접하던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인파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영화 ‘대부 3’의 촬영지로 유명한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 빈 오페라 하우스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이 오페라 극장은 그리스 코린트식 기둥으로 세워진 웅장한 외관이 압도적이다. 내부에 들어서 고개를 들면 붉은빛과 금빛으로 찬란한 천장, 그리고 벽화 ‘음악의 승리’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벽면을 장식한 무라노 유리 샹들리에는 객석마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시칠리아 미학의 압축판이라고 불리는 ‘노르만 궁전’ 역시 중후한 위용을 자랑한다. 군더더기 없는 아치로 둘러싸인 단정한 르네상스풍 마케다 중정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루지에로 방’에서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황금빛 모자이크가 쏟아진다. 궁전 내부의 ‘팔라티나 예배당’은 9세기 아랍 궁전 자리에 12세기 노르만 왕조가 다시 세운 밀도 높은 공간이다. 아랍풍 잔재 위로 중세의 엄격함이 덮인 역사적 사실과 시각적 요소가 연결될 때 도시의 정신 없는 혼재는 오히려 ‘융합’의 감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2000년 전 장인과의 조우

팔레르모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도시인 몬레알레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벽면이 성서 이야기로 빼곡한 이곳의 대성당 내부 역시 황금 모자이크로 뒤덮여 있다. 클로이스터는 쌍을 이룬 얇은 기둥이 늘어서서 회랑을 이룬다. 아랍식 기둥은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고, 기둥머리에는 동물·꽃·식물이 새겨져 있다. 정원을 둘러싼 회랑을 천천히 걷다 보면 시칠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혼재를 읽어내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에 있는 4세기 로마 모자이크. 흔히 ‘비키니 소녀들’로 불린다.  /ⓒ박은새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에 있는 4세기 로마 모자이크. 흔히 ‘비키니 소녀들’로 불린다. /ⓒ박은새
4세기 로마 귀족의 대저택인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에서는 더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수십 개의 방과 냉·온탕, 체육관, 교회까지 갖춘 호화로운 시설이지만, 이곳의 압권은 바닥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화다. 12세기에 발생한 산사태로 약 700년간 흙 속에 파묻혀 있던 덕분에 기적적으로 원형 거의 그대로 발굴됐다. 그 덕에 생생한 사냥 같은 일상 장면부터 신화, 기하학 무늬 등이 대리석 조각으로 완벽하게 표현돼 있다. 특히 비키니 스타일의 운동복을 입고 공을 던지는 여성들을 그린 ‘비키니 소녀들’이 유명한데, 그림 속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이 오늘날 우리의 얼굴과 묘하게 닮아 낯설지 않다. 바닥에 거대한 그림책처럼 펼쳐진 대리석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2000년 전 그들의 활기찬 일상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광활한 대저택의 바닥을 대리석 조각으로 메우는 과정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괜히 어깨가 결려오는 듯한 느낌도 든다.

<표범(Il Gattopardo)>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꼽힌다.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자신의 증조부를 주인공의 모델로 삼아 1860년대 이탈리아 통일 시기에 몰락하는 귀족의 이야기를 썼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 소설의 역설은 인공지능(AI)이라는 새 문명을 만난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야만 살아남는 시대다. 수천 년의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시칠리아의 모자이크 조각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기록하는 오늘은 수천 년 뒤 어떤 이야기로 남게 될까.

시칠리아=박은새 디렉터(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