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AFP연합뉴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AFP연합뉴스
“26세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밤길을 혼자 걸을 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감각을 상상하며 썼어요.”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3일 16번째 장편소설 <가호(夏帆)>(사진)를 내놓는다. 올해 77세의 하루키는 3년 만에 낸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모녀 관계와 가족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배치했다.

하루키는 신작 출간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은 개인이라는 존재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 거의 쓰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가족 이야기에 도전해도 좋을 시기가 됐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26세 그림책 작가 가호다. 소설은 그가 첫 만남에서 연상의 남성으로부터 “너처럼 못생긴 사람은 처음 본다”는 말을 듣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루키는 “2024년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와의 낭독회를 위해 쓴 단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며 “청중을 단숨에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강렬한 도입부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책마을] 무라카미 하루키 3년만에 장편소설 '가호' 발표
이번 작품은 하루키 문학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담고 있다. 장편으로는 처음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서다. 여성의 시각을 더욱 의식하게 된 배경으로는 2023년 미국 웰즐리대 특별객원교수 경험을 꼽았다. 그는 “여자대학에서 남성 작가의 여성 묘사를 둘러싼 토론을 많이 접했고, 여성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의 핵심은 가족, 특히 모녀 관계다. 무라카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더 마음이 끌렸다”며 “사랑만으로 이뤄진 관계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두운 이야기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40차례 이상 풀마라톤을 완주한 마라토너이기도 한 하루키는 자신의 창작 비결도 소개했다. 하루키는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중요해진다”며 “그 기억들이 충분히 쌓이면 오히려 기억들이 나에게 ‘이제 나를 써 달라’고 말을 건다. 그래서 나는 이른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창작 과정에서 글쓰기가 멈추는 것)’과는 거의 인연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체중이 17㎏ 줄어드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했다가 회복했다며 “이제 더는 쓸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퇴원하고 나아지자마자 다시 쓰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날 0시 도쿄 신주쿠구 기노쿠니야 서점에서는 하루키 새 소설 판매 개시 이벤트가 열렸다. NHK는 자정에 열린 이벤트였음에도 열성적인 팬들이 몰렸다고 전했다.

하루키의 신작 발표에 한국 출판사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유독 인기가 높은 만큼, 국내 판권을 둘러싼 출판사들의 전쟁도 곧 시작된다.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이 이미 입찰 의사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키 책의 선인세(계약금)는 2000년대 들어 1억원을 돌파했고 2009년 <1Q84>부터 10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도쿄=최만수 특파원/설지연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