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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데이터가 흐르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도 멈춘다
문일주 한국전력공사 기술혁신본부장
재생에너지 확대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가 맞물린 현재, 전력계통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AI가 효과적인 대응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결코 만능열쇠가 될 순 없다.
AI의 성과는 데이터, 알고리즘, 컴퓨팅 파워라는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추고 고성능 인프라를 확보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면 AI는 반쪽짜리 기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데이터는 AI의 연료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다. 공공이 보유한 에너지 데이터를 민간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은 미래 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영국의 스마트미터 데이터 개방정책은 ‘크라켄(Kraken)’이라는 혁신적 플랫폼을 등장시켰다. 스페인은 ‘데이터디스(Datadis)’를 통해 배전회사 간 표준화된 정보연계로 민간 기업의 데이터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국내서도 유가정보 공개 플랫폼 ‘오피넷’이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시장 경쟁을 촉진했다. 이들 사례는 데이터 공유가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공공기관이 보유한 전력 데이터의 잠재적 가치도 크다. 발전에서부터 송배전, 고객정보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는 전력수요 예측과 재생에너지 발전 최적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효율화 등 에너지 신산업 전반의 AI 솔루션 개발에 핵심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한전은 단순한 데이터 공개를 넘어 AI 활용 중심의 개방형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마켓 플레이스와 데이터 안심구역 등 개방형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후테크 및 전력 데이터 관련 기업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성공적인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해선 개별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 개방 의지나 기술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기관 간 데이터 표준화, 데이터 활용 기업의 접근성 확보, 통합 보안정책 수립 등 법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데이터 공유·활용 등을 위한 통합 관리 시스템 투자 비용을 마련하고 관련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설계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유와 달리 데이터는 나눌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공공이 데이터를 개방하면 민간은 혁신 서비스를 개발하고, 그 성과는 다시 국민의 편익과 전력망의 안정성으로 돌아온다. 데이터 개방은 에너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