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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스티브 잡스는 왜 매일 똑같은 '아재 신발'만 신었을까 [조셉의 패션 알쓸잡썰]
우리가 몰랐던 뉴발란스 992
먼저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억 하나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2007년 1월 첫 아이폰 공개 무대에서 잡스가 신었던 신발은 992가 아니라 이전 모델인 991이다. 회색 스웨이드와 메시 소재의 조합 그리고 전체적인 실루엣이 유사하기에 신발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같은 신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잡스가 992를 신기 시작한 것은 2007년 후반부터다. 이후 르노 안경, 이세이 미야케 터틀넥과 리바이스 501, 회색 뉴발란스를 착용한 사진이 쌓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991과 992는 하나로 섞인 것이다. 아이폰을 처음 공개한 날의 신발은 991이었지만 아이폰 시대의 잡스를 상징한 신발은 992였던 셈이다.
1000점 만점에 990점이라는 자신감
이 992라는 신발의 근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2년 출시한 990이다. 당시 뉴발란스는 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러닝화를 내놓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광고 카피에도 1000점 만점에 990점을 줄 수 있는 신발이라는 자신감이 담겼다. 가격도 파격적이었다. 990은 그 시절 최초로 100달러라는 가격을 돌파한 러닝화였다.특히 뉴발란스는 높은 가격을 스타 마케팅이나 화려한 디자인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대신 착화감, 안정성, 우수한 소재로 소비자들을 설득했다. 이러한 브랜딩 전략 이후 99X 시리즈의 기조가 됐다. 멀리서도 알아보는 로고 대신에 착용한 사람들은 알 수 있는 우수한 완성도를 택한 것이다.
992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썰이 있다. 당시 뉴발란스 회장 짐 데이비스가 스티브 잡스에게 디자인 조언을 구하면서 992 기획에 스티브 잡스가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공식 기록도 없고 992를 디자인한 조너선 베이컨도 잡스와 직접적인 협업은 없다고 밝혔다. 확실한 것은 잡스가 이 기본적인 회색 러닝화 992를 낡을 때까지 반복해서 신었다는 것이다. 그 반복이 어떤 광고보다 강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발매 초기 대중의 반응은 소소했다는 점이다. 당시 신발 시장은 SB 덩크부터 이어진 에어 포스 1, 에어 조던 등 화려한 스트리트 무드의 신발들이 유행이었다. 복잡한 회색 패널과 두툼한 밑창을 가진 992는 시대를 조금 앞서거나 비껴간 신발에 가까웠다. 생산량도 적지 않아 저가에 풀리는 경우도 많았다. 즉 992는 처음부터 희귀해서 전설이 된 것이 아니라 한동안 잊혔다가 다시 발견되며 전설이 된 신발이다.
한동안 잊혀진 신발이 매력적으로 변신하다
2008년 991과 992의 장점을 조합한 후속 모델인 993이 출시되었으나, 992의 묵직한 인상을 완벽히 대체하지 못했다. 이어 2010년 뉴발란스는 992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 그렇게 잊혀지던 992는 단종 이후 10년만인 2020년 복각했다. 돌아오는 방식이 상당히 영리했다. 당시 힙했던 브랜드, 편집숍들과 협업으로 992가 새로운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신발로 보이게 했다.
같은 옷을 반복하는 사람의 힘
그리고 함께 되살아난 것이 유행과 거리를 둔 채 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사용했던 스티브 잡스의 태도였다. 잡스가 남긴 이미지는 이 투박한 회색 신발에 쉽게 낡지 않는 서사를 만들어줬다. 한정판이 넘쳐나는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회색 992가 여전히 특별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움을 좇지 않았던 사람의 신발이 오히려 긴 시간 동안 새롭게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잡스는 왜 매일 비슷한 옷과 같은 신발을 고집했을까.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링을 정의한다면 '조용한 럭셔리'라는 요즘의 해석 대신 평범한 옷을 반복해서 자신만의 상징으로 만드는 '노름코어'에 가깝다. 물론 992 스타일 자체가 오늘날 절제된 소비 매니아(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이 많다. 로고가 크지 않고, 소재와 착화감, 품질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알아보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아이템이라는 것도 그렇다. 과시하지 않는 태도가 하나의 과시가 되는 패션의 역설을 992는 잘 보여준다.
클래식은 나중에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