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파리 5구의 한 약국을 기사로 다뤘다. 주인공은 ‘파르마시 몽쥬’(몽쥬약국). 외국인 손님의 70% 이상이 화장품을 사러 온 한국인이었고, 약국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직원 12명을 배치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건너뛰어도 몽쥬약국은 들르던 시절이었다.
그래픽=김하경 기자
10년이 지난 지금 서울 명동의 대형 약국은 외국인 응대 직원을 10여 명씩 두고 있다.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이 연고, 재생크림 등을 박스째 사 간다. 한국형 몽쥬약국이 수십 곳 생긴 것이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관광·뷰티 특화 약국인 도레미약국이 이달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 문을 연다. 파리바게뜨와 뉴발란스가 차례로 영업한 강남대로 핵심 상권이다. 길 건너엔 300㎡대 매장에 개방형으로 약을 진열한 레디영약국이, 인근엔 맞춤형 상담을 결합한 옵티마웰니스뮤지엄(OWM)이 있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이들 약국은 처방전을 내주는 병원이 아니라 관광객 동선을 따라 입지를 정한다”고 말했다.
서울 대표 관광 상권인 명동의 신규 개설 약국 수는 2024년 2곳에 불과했지만 올해 1~8월엔 19곳에 달했다. 지난해 9월 명동에 레디영약국과 베리뉴약국이 동시 개점한 뒤 관광·뷰티 특화 약국은 1년 새 60여 곳으로 늘었다. 레디영약국은 점포 10곳, OWM은 9곳을 내며 몸집을 불렸다. 일부 뷰티 특화 약국의 월매출은 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뷰티 수요를 약국과 결합하려는 시도는 27년 전에도 있었다. 199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1호점을 낸 CJ올리브영이 매장 안에 약국을 들였다. 코오롱의 W스토어와 GS리테일 왓슨스, 이마트의 분스와 부츠 등이 실험을 이어갔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올리브영만 약을 떼어내고 뷰티 편집숍으로 갈아타 살아남았다.
유통 대기업이 연달아 실패한 사업이 최근 외국인 수요에 힘입어 확대되고 있다. 뷰티 편집숍의 진열 노하우와 마케팅 방법론을 약국이 그대로 흡수했다. 백화점과 면세점, 올리브영에 이은 새로운 K뷰티 스토어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