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에 따른 세계 항공업계의 비용 부담이 수십억달러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 확대로 탄소배출권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구글 등 미국 빅테크는 탄소배출권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탄소 제거 기술 크레디트’ 대량 확보에 나섰다.
◇탄소배출권 가격 여덟 배 상승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탄소시장 데이터 업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카본마켓은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대 여덟 배 가까이 상승해 2035년에는 t당 1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항공사의 배출권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돈 데 따른 것이다. 2024년부터 2035년까지 적용되는 국제 항공 탄소 감축 제도인 ‘코르시아’에 따라 글로벌 항공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최대 1270억달러(약 1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코르시아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운영하는 제도다. 국제선 운항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2019년의 85%를 초과하면 항공사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이를 상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코르시아 도입으로 에미레이트항공이 가장 큰 부담을 질 것으로 전망된다. MSCI는 에미레이트항공이 제도 시행 기간 80억달러(약 12조원)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사 지난해 매출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카타르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은 각각 60억달러(약 9조원), 50억달러(약 8조원)를 부담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동안 항공사들은 탄소배출권을 원자재처럼 언제든 안정적 가격에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해왔다. 하지만 탄소 데이터 업체 실베라의 벤 래튼버리 정책 담당 부사장은 “코르시아 시장은 기존 가정과 정반대로 유동성이 제한되고 공급이 부족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빅테크는 선제 대응
미국 빅테크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구글, 스트라이프 등이 2022년 세운 탄소 제거 기술 구매 단체인 프런티어는 최근 신규 자금 9억15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를 추가했다. 프런티어의 총약정 규모는 18억달러(약 3조원)로 늘었다. 해당 자금을 해양 알칼리화, 바이오매스 기반 제거 등 각종 탄소 제거 기술 개발에 투입해 탄소 제거 기술 크레디트를 확보할 예정이다. 탄소 제거 기술 크레디트는 시장에서 탄소배출권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최근 유럽연합(EU)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강화돼 산업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EU는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ETS)를 2023년 개정해 2030년까지 ETS 대상 부문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2% 줄이도록 총량을 강화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올해 1월 전면 시행했다. CBAM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탄소 다배출 품목에 EU 역내 제품과 같은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 관세’다. 이에 따라 EU 지역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22일 t당 81.35유로까지 치솟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 동기보다 10% 이상 올랐다.
◇철강·석유화학 어려움 커져
온실가스 감축의 직격탄을 맞은 철강업도 부담이 더 커졌다. 고로 기반 제철은 철광석 생산 과정에서 대규모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전기로 비중을 높이면 이산화탄소 배출은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전력 비용 증가와 고급강 품질 문제가 생긴다. 석유화학업도 비슷하다. 나프타 분해, 합성수지 등의 공정에서 열과 전기를 많이 쓰고 원료 자체가 화석탄소 소재다.
국내에선 최근 탄소배출권 가격이 t당 1만~2만원대를 오르내리며 유럽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충분한 공급과 시장 안정 조치가 결합된 결과다. 올해 시작된 정부의 ‘2026~2030년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에 따르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로 높아진다. 하지만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수출 주도 업종은 약 95%가 여전히 100% 무상할당 대상이다.
이처럼 낮은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CBAM은 수출국이 탄소 가격을 지불했다면 EU 수입 시 그만큼 감면해준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국내에서 관련 비용을 덜 지불했다면 EU에 수출할 때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이산화탄소 t당 1만원만 한국에서 부담했다면 유럽에서 81유로(약 14만원·최근 가격)와 차액만큼 CBAM 인증서를 새로 구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