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자 구조작업 > 프랑스와 미국 구조대원이 2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에서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 속 생존자를 구조해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 생존자 구조작업 > 프랑스와 미국 구조대원이 2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에서 지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 속 생존자를 구조해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4일 발생한 베네수엘라 지진과 관련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때부터 누적된 시스템 문제가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돈을 무상복지에 쓰면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실 주택 문제가 발생했고 국가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2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진으로 사망한 인원이 1450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야당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등록된 실종자는 약 5만 명으로 사망자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해 규모는 27년간 지속된 ‘차비스모’ 체제의 결함을 드러낸다”고 짚었다. 차비스모는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대중영합적 좌파 노선을 가리킨다. 1999년 취임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높은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사회주택 건설을 비롯한 복지 프로그램과 가격 통제 정책에 자금을 집중 투입했다. 하지만 석유 가격이 하락하며 인플레이션율이 치솟고 재정적자가 확대됐다.

FT는 이 과정에서 국가 제도와 행정 역량이 약화했다고 분석했다. 부패가 늘어나는 가운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한 군이 기존 정부 부처 기능을 상당 부분 대체했다는 것이다. 올랜도 페레스 노스텍사스대 정치학 교수는 “적절한 장비도 갖추지 못한 소방관들, 바닥에 쓰러진 환자로 넘쳐나는 병원 등이 제도적 퇴보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재난 대응에 쓰일 자원이 있었지만 정권의 쿠데타 방지와 부패를 위해 사용됐다”고 말했다. 쿠데타를 막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구조용 소방 장비보다 시위대 해산용 물대포 등의 구입을 우선시했다는 설명이다.

차비스모 집권 기간 정책 성과로 내세운 사회주택도 지진의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라과이라주에 있는 카라바예다에서는 공공주택 대부분이 무너졌다. 건물 잔해에서는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를 두꺼운 스티로폼으로 메운 흔적이 발견됐다.

과거 골프클럽, 호텔 등이 있던 이 지역은 20여 년 전 차베스 정부가 표를 얻기 위해 공공주택 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한 곳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주민은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건물 벽에 금이 가고 철근이 노출되는 등 부실 공사의 증거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당시 차베스 정부는 건설 안전성 점검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 후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정부의 미흡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군인과 경찰 등 수천 명이 현장에 배치됐지만 구조 작업은 소방관과 해외에서 지원을 온 구조대원이 주로 맡았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구조 인력과 장비마저 부족해 생존자들이 직접 잔해를 손으로 옮기며 생존자 수색에 나섰다는 증언도 나왔다.

에드워드 로드리게스 정치분석가는 “델시 로드리게스 정부는 재난 발생 72시간이 넘도록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하지 못했다”며 “비상사태를 관리하기 위한 계획과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