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날마다 속마음 털어놓는 당신, 별일 없겠죠? 신간 <우리는 왜…>
<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AI와 매일 관계 맺는 인간에 대해 탐구
목소리가 들리면 '사회적 모드'로 진입
나를 위해서만 말하는 '완벽한 대화 상대'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AI를 도구로 써야
AI와 매일 관계 맺는 인간에 대해 탐구
목소리가 들리면 '사회적 모드'로 진입
나를 위해서만 말하는 '완벽한 대화 상대'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AI를 도구로 써야
업무 파트너, 친구, 심리 상담사의 역할을 전방위적으로 하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진짜 가족을 잃은 것 이상의 거대한 상실감과 슬픔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이모란 명지전문대 교수가 쓴 <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는 이처럼 AI에 마음을 쏟는 인간에 관한 책이다. 인간은 왜 알고리즘에 불과한 AI를 가족이나 친구로 여기며 위로를 받는 것일까.
비밀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 숨어 있다. 인간의 뇌는 오랫동안 ‘말을 주고받는 존재는 인간’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진화해 왔다. 상호 작용은 인간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인류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디선가 목소리나 다정한 텍스트가 보이면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사회적 모드’를 켠다. 상대가 기쁜지, 슬픈지, 혹은 화가 났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관계를 맺으려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AI는 어쩌다 보는 친구가 아닌, 매일 마주치는 대상이다. 낮 동안에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자료를 조사해 주고, 깊은 밤 꺼내놓은 고민에도 즉각 대답을 건넨다. 사람은 가끔 말을 끊고 무심하게 넘기지만 AI는 한결같이 경청하고 짜증을 내지 않는다. 심지어 ‘저번에 말씀하신 그 문제는 잘 해결됐나요’라며 과거의 대화를 기억해 묻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화 상대’의 등장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 양식이 과거의 ‘찾기’에서 이제는 ‘묻기’로 전환됐다고 진단한다. 구글 같은 기존 검색 엔진이 사용자가 던진 키워드에 맞춰 파편화된 웹페이지 리스트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생성형 AI는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답변을 만들어 낸다.
묻기는 본질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전제하는 활동이다. 문제는 이 소통이 의존으로 변질하는 순간 발생한다. AI는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고독을 달래주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견뎌내는 내면의 힘을 퇴화시킨다.
언제든 검색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인간의 기억력을 떨어뜨렸듯, A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생각마저 대행한다. 단순히 정보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문장을 대신 쓰고, 판단을 정리하며, 감정까지 다독여 준다. 생각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던 도구가 어느새 생각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AI를 거부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MIT 연구진이 대학생 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에세이 작성 실험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참가자들을 챗GPT 의존 그룹과 오직 자기 두뇌만 사용하는 그룹 등으로 나누었을 때, 예상대로 챗GPT를 쓴 이들의 두뇌 신경 활동이 가장 저조했다. 흥미로운 반전은 그다음이었다. 오직 머리만 쓰며 뇌를 치열하게 자극했던 그룹에 챗GPT를 쥐여주자, 이들은 기억 회상 능력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서와 균형이다.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그다음 AI를 도구이자 협력자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질문과 고민, 그리고 의도적인 연습, 이것만이 나를 지키고 AI를 건강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감정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오직 나만을 위한 맞춤형 달콤한 말만 건네는 AI에 길든 인간은, 현실 속 타인의 결함을 보듬고 받아들이는 ‘인간적인 근육’을 서서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