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발(發) 반도체 슈퍼호황을 구조적 전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물론 존재한다. 상승기의 진폭이 유례없이 크긴 하지만 이 또한 예외 없이 반복되는 경기 순환의 일부라는 것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2026년은 AI가 업무 전반에 본격적으로 내재화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면서도 “이미 이익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고, 신규 시장 진입자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업종 전체의 수익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AI의 영향력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4년 발표한 ‘AI의 단순 거시경제학’ 논문에서 “10년 안에 AI로부터 의미 있는 영향을 받을 업무는 19.9%고, 이 가운데 수익성을 낼 수 있는 업무 비중은 23%여서 실제로 AI의 영향을 받을 업무는 전체의 4.6%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관련 산업의 초호황도 ‘AI 테마국가 효과’일 뿐으로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AI 전환의 병목인 반도체와 저장장치, 통신장비, 전력기기 등 관련 산업을 보유한 한국이 일시적인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다. 테마 열풍이 뜨거울수록 대체 기술 개발 수요가 커지고, 그만큼 경기 하강의 골도 깊을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부 고위 관계자는 “1달러를 밑돌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30~40달러까지 치솟았으니 어디선가는 반도체 없이 AI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것”이라며 “반도체 수요나 기술의 방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AI 대전환의 발화점인 원천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가 굳어져 가는 것은 한국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된다. 한국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인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나 LG 엑사원의 안착 없이 AI 대전환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긴 어렵다는 자성이다. 산업부 출신 전문가는 “최고의 기술력과 가치창출력을 기반으로 구조적 전환에 성공했다기보다 저평가된 환율과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대만 모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피지컬 AI로 전환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본격적인 피지컬 AI 시대로 넘어가기에는 데이터, 하드웨어 등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며 “가정용 홈로봇 시대가 열리기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전환이든 경기 순환의 일부든 한국이 AI 특수를 누리기 최적의 국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제조업 생태계를 완벽하게 갖춘 한국은 전 세계 공급망 분절이 발생한 틈에 AI 시대가 요구하는 완제품을 가장 빠르게 생산·제공할 수 있다”며 “그 덕분에 시장 변화에 제일 먼저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AI 특수를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면 원천 기술력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전 원장은 “AI 관련 완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수평적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미국 독일 일본보다 뛰어나지만 완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소부장 경쟁력을 포함하는 수직적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 역시 공급을 창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요를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퓨리오사AI, 리벨리온 같은 토종 기업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일정 비율 이상 쓰도록 하는 식으로 성장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