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말랑이 등을 구매하기 위해 온 2030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말랑이 등을 구매하기 위해 온 2030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원래 오후 5시만 해도 이 골목에는 박스 테이프 감는 소리만 들렸어요. 근데 지금은 애들은 물론이고 바글바글하잖아요."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앞역 근처에서 카페를 연 박모씨(35)가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평일인 17일 오후 1시에도 문구·완구 거리는 말랑이를 사러 온 2030으로 가득 찼다. 과거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던 오후 5~6시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최근 동묘가 '핫플의 대명사' 성수를 위협할 정도로 2030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온라인 관심도 역시 성수를 추월했다. '말랑이 성지'는 물론 동묘 구제시장부터 문구·완구 거리까지 한 번에 구경할 수 있는 '동묘 투어 코스'가 입소문을 탄 영향이다. 올해 초부터 젊은 방문객 유입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인근 상인들은 변화를 체감했다. 다만 이를 두고 동묘가 을지로·문래·성수처럼 상권 변화를 겪게 될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성수 검색량 제친 동묘…'말랑이 성지'로 기업까지 주목


지난 5월 동묘 검색량은 처음으로 성수를 제쳤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 5월 동묘 검색량은 6만8000건으로 성수(5만3600건)를 넘어섰다. 이전까지 동묘는 2만~3만건, 성수는 3만~5만건의 검색량을 기록해왔다.

동묘 관심도를 끌어올린 일등 공신은 '말랑이'였다. 올해 초부터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말랑이 성지'라는 입소문을 탔다. 촉감이 중요한 완구인 만큼, 온라인 쇼핑몰보다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장소로 문구·완구 거리가 주목받았다. SNS에는 일명 '동묘 하루 코스'로 구제시장부터 문구·완구 거리를 함께 둘러보는 콘텐츠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날 기준 인스타그램 '동묘' 해시태그 게시물은 67만개를 넘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 롯데홈쇼핑이 제작한 벨리곰 말랑이가 진열돼 있다. 왼쪽은 롯데홈쇼핑이 문구·완구거리에서 이벤트를 진행한 모습. 이벤트 제품은 당일 오전에 모두 소진됐다. /사진=박수빈 기자·인스타그램 갈무리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 롯데홈쇼핑이 제작한 벨리곰 말랑이가 진열돼 있다. 왼쪽은 롯데홈쇼핑이 문구·완구거리에서 이벤트를 진행한 모습. 이벤트 제품은 당일 오전에 모두 소진됐다. /사진=박수빈 기자·인스타그램 갈무리
이에 기업들도 동묘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10일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서 자체 캐릭터 벨리곰을 활용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 상점과 협업해 벨리곰 말랑이를 무료 배포했다. 물량은 행사 당일 오전 중에 모두 소진됐다. "그날 오전에 다 나갔다"며 "오픈런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말했다.

말랑이를 찾는 2030 발길은 완구거리를 넘어 인근 상권으로도 번지고 있었다. 동묘앞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씨(35)는 "완구거리에 카페나 식당이 많이 없다 보니까, 젊은 친구들이 구제시장이나 말랑이를 사고 많이 온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며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식당가에는 웨이팅이 생겼다. 지난달 오후 6시께 동묘앞 역 인근 식당에는 대기 줄이 늘어섰다. 문구·완구 거리를 찾았던 젊은 방문객들이 저녁 시간이 되자 식당·카페로 향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말랑이 등을 구매하기 위해 온 2030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가 말랑이 등을 구매하기 위해 온 2030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2030 유입이 꾸준히 이뤄지자 부동산 시장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묘 일대 공인중개업소를 취재한 결과, 문구·완구 거리 일대 상가 공실은 0%였다. 이 일대에서 13년간 부동산을 운영한 전영실 씨(66)는 "그전에는 완구거리가 도매 위주로 하고 사람이 몰리지 않았다. 2017, 2018년부터는 하락 추세였다"며 "그런데 올해부터 많아지더니 주말은 물론 지금은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지금 이 근방 공실률은 0%"라고 말했다. 문금주 공인중개사(70대)는 "계엄 이후에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음식점 등 상가 입점 문의도 늘어났다"고 했다.

입점 문의 늘었지만…"제2의 성수 쉽지 않아"

지난 5월 20일 오후 6시경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말랑이 쇼핑을 끝낸 2030이 인근 카페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5월 20일 오후 6시경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말랑이 쇼핑을 끝낸 2030이 인근 카페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수빈 기자
다만 중개업계에서는 동묘가 성수·문래처럼 빠르게 상권 재편을 겪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일대는 대부분 소규모 점포와 노후 건물로 이뤄져 있는 데다, 음식점·카페 입점을 위해서는 용도 변경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동묘앞역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지금 공실 없지만, 옛날 건물이라 용도 변경 허가가 어려워 들어오기 힘들 것"이라며 "완구업에서 손 떼려고 했던 사람들 마음이 바뀐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상인 일부도 동묘가 성수·문래처럼 상권 재편을 겪을 가능성에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8년 전부터 동묘앞역 인근에서 식당을 3개 운영하는 B씨는 "인구 유입이 이렇게 폭발적이고 지속되면 상인들은 모일 것 같지만, 가게 수 자체는 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신흥상권이 핫해질 때는 돈 없는 상인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업종을 바꾸려면 정화조도 묻고, 준비할 게 많아 진입장벽이 있다"고 했다.

그는 "동묘 일대가 3개 호선이 인접해 있고, 평지고, 서울 중앙이고, 콘텐츠까지 있어 유니크한 브랜딩이 있는 곳"이라면서도 "2030은 물론 40대까지 발걸음하게 할 만한 콘텐츠로 좀 더 발전돼야 부흥의 당락을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동묘가 젊은 층 유입이라는 '시간적 연속성'은 확보했지만, 상권 확장에 필요한 '규모의 연속성'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상권이 변화하려면 시간·규모 연속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게 중요한데 동묘는 시간적 측면에서만 젊은 층 유입의 연속성을 갖고 있다"며 "규모가 커지려면 신규 공급이나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지만 현재 동묘는 환경적 제약이 크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