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쿠팡의 금융 계열사 쿠팡파이낸셜이 판매자 대상 대출상품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쿠팡의 금융 실험을 기대하는 시각이 많았다. 담보나 신용이 아니라 오직 판매자의 ‘장사하는 힘’을 보고 대출을 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영향으로 최고 금리가 연 18.9%인 점이 부각되면서 폭리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금융감독원까지 검사에 나서면서 대출이 중단됐다.
신용 대신 판매실적 본다…돌아온 '쿠팡 대출'

◇미래 매출 예측해 평가

쿠팡파이낸셜이 ‘쿠팡 판매자 성장대출’을 반 년만에 재개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쿠팡파이낸셜은 최근 금리 산정 체계와 운영 절차를 재정비하고 일부 판매자를 대상으로 대출을 시작했다. 금리는 연 8.9~18.9%에서 연 8.4~17.4%로 낮아졌다. 쿠팡파이낸셜 관계자는 “금융당국 검사 과정에서 지적된 사항을 반영하고 내부 통제 체계도 개선해 대출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쿠팡 판매자 성장대출은 국내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플랫폼 데이터 기반 대출이다. 은행이 담보와 신용점수,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대출 여부를 판단한다면, 쿠팡은 플랫폼 안에서 축적한 판매 데이터를 활용한다. 판매 실적과 매출 흐름, 반품률, 사업 지속성 등을 분석해 미래 매출을 예측하고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매출을 기반으로 돈을 빌려주는 특성상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최고 금리에 관심이 쏠리면서 한때 고금리 논란이 커졌다. 이용자 상당수가 기존 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중저신용 소상공인이라는 점은 고려되지 못했다.

실제 쿠팡에서 2년간 치즈 등 가공식품을 판매해 온 개인사업자 A씨는 최근 매출이 급증하면서 원재료 매입 자금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대출을 거절당했다. 소득 증빙과 재무자료만으로는 최근의 매출 증가세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A씨는 “주문은 계속 들어오는데 원재료를 살 돈이 부족했다”며 “쿠팡에서 대출받지 못했다면 주문을 취소하거나 손실을 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기존 금융권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출 절차도 간편

쿠팡 판매자 성장대출은 상환 구조도 일반 대출과 차별화했다. 은행 대출은 매달 정해진 원리금을 갚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쿠팡 판매자 성장대출은 매출의 5~15%를 원리금 상환에 쓰는 구조다. 매출이 늘면 더 많이 갚고, 매출이 줄면 상환액도 줄어든다. 계절에 따라 매출 변동이 큰 온라인 소상공인에게는 고정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대출 절차 역시 간편하다. 은행 대출은 소득 증빙, 재무자료, 사업자 서류 등을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쿠팡 판매자 성장대출은 신청부터 입금까지 평균 4분 안팎이면 끝난다. 별도 앱 설치나 서류 제출 없이 스마트폰과 신분증만으로 본인 인증 및 전자서명을 거치면, 쿠팡이 보유한 판매 이력과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심사가 이뤄진다.

해외에서는 이미 비슷한 모델이 자리 잡았다. 아마존, 쇼피파이 등 해외 플랫폼 기업은 판매자 데이터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통 금융회사가 보유한 정보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사업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플랫폼 데이터가 새로운 신용평가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금융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