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추방된 이후 귀국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소말리아 국제 심판 압둘카디르 아르탄 / EPA 연합뉴스
미국에서 추방된 이후 귀국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소말리아 국제 심판 압둘카디르 아르탄 / EPA 연합뉴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미국의 국가 홍보 무대가 아니라 이민정책 논란의 시험대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입국 심사와 비자 제한이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의 흥행과 개최국 이미지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월드컵 심판, 테러 연계 의심에 추방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월드컵을 미국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관광 수입을 끌어올릴 역사적 기회로 홍보했다. 그러나 12일 미국 땅에서 열린 첫 경기 개막은 공항 억류와 비자 거부, 글로벌 비판과 함께 시작됐다. 월드컵 선수와 스태프, 관계자 20여명 이상이 미국 입국 과정에서 비자·입국 문제를 겪었다.

가장 주목받은 사례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소말리아 심판 오마르 압둘카디르 아르탄이다. 그는 승인된 미국 비자와 FIFA 자격증을 갖고 마이애미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10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뒤 미국에서 추방됐다. 미국 당국은 추가 심사 과정에서 테러 조직 관련자로 의심되는 인물들과의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르탄은 소말리아 출신으로는 처음 월드컵에서 심판을 맡을 예정이었다. 소말리아 축구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당국은 그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 전자기기도 압수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소말리아 정치와 알카에다 연계 테러 조직 알샤바브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말리아 정부와 축구계는 그가 미국 영사 당국의 심사를 거쳐 비자를 받은 만큼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추방된 뒤 모가디슈에서 100명 넘는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월드컵을 이민 단속과 분리하려 했다. 행사 홍보 문구는 “미국은 세계를 환영한다”였다. 정부는 티켓 보유자를 위한 우선 비자 예약 시스템을 만들고, 선수에게는 예외 조항도 마련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들어 대규모 이민자 체포, 강화된 심사, 여행객 고강도 억류 사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부정적 여파가 커졌다.

각 국에서 커지는 미국 국경 정책 반감

몇몇 유럽 국가는 자국민이 미국 국경에서 억류된 뒤 미국 여행 권고를 갱신했다.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국제 방문객 수는 5.5% 줄었다. 주요 관광지 가운데 방문객이 감소한 곳은 미국뿐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와 독일 잡지 표지에는 트럼프와 복면을 쓴 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이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흥을 깨는 사람”이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미국 비자 거부 서류를 보여주는 선착순 100명에게 무료 TV를 주는 행사까지 나왔다.

월드컵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한다. 전체 FIFA 경기 104개 중 78개가 미국 도시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특별한 축구대회”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렛 브루언 전 미국 외교관은 월드컵 개막일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와 그의 팀이 선수와 팬, 전 세계의 참여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 됐다고 비판했다.

경제적 기대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FIFA와 세계무역기구가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한 달간 열리는 월드컵 기간 약 120만명의 해외 방문객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됐고, 최대 172억달러의 국내총생산 효과가 전망됐다. 그러나 미국호텔숙박협회 조사에서는 미국 개최 도시 호텔 운영자의 거의 80%가 예약이 초기 전망보다 낮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0%는 비자 장벽과 더 넓은 지정학적 우려가 월드컵 여행 수요를 크게 억누르고 있다고 봤다.

트럼프 행정부는 혼란을 국가안보의 대가로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드컵 참석자 입국 문제에 대해 “올바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도록 매우 면밀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자들은 미국이 수백만 명의 여행객을 환영하면서도 미국 법과 국가안보, 공공안전 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대표팀 선수 출전 차질까지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대표팀이 차질을 겪고 있다. 가나 선수 토머스 파티는 캐나다 비자가 거부돼 개막전에 나설 수 없게 됐다고 FIFA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는 영국에서 7건의 강간 혐의와 1건의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란 대표팀은 미국·이란 전쟁으로 긴장이 커지고 비자 문제가 복잡해지자 애리조나 훈련 계획을 접고 멕시코 티후아나로 기지를 옮겨야 했다.

미 국토안보부는 이란 선수들이 각 경기 전날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대표팀과 축구협회 스태프 일부는 비자를 거부당했거나 비자 없이 남겨졌다. 이라크 선수 한 명은 시카고에서 거의 7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휴대전화 검사를 받은 뒤 입국이 허용됐다. 이라크 대표팀 사진기자는 입국이 거부됐다. 아이티, 스위스, 모로코 선수와 스태프들도 대회 막판 비자 문제로 일정이 지연됐다.

이번 갈등은 미국의 월드컵 개최 목표와 이민정책의 우선순위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드컵은 원래 개최국이 관광, 도시 브랜드, 외교적 영향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행사다. 그러나 입국 심사가 경기 준비와 팬 이동을 막는 변수로 부상하면, 경제효과와 국가 이미지 모두 훼손될 수 있다.

남은 불확실성은 안보와 개방 사이의 균형이다. 미국 정부는 테러 위험과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강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선수와 심판, 팬이 승인된 비자와 대회 자격을 갖고도 억류되거나 추방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개최국 신뢰는 약해질 수 있다. 특히 국제대회는 경기장 안의 안전뿐 아니라 국경과 공항에서의 예측 가능성도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