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좋은 경기장은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난 11일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북미 3개국에서 공동 개최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됐다. 올해부터 48개국이 참여해 조별리그부터 32강 토너먼트까지 104경기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기가 펼쳐진다. 경기 수가 많은 만큼 많은 경기장에서 경기가 개최되는데, 미국 11곳, 캐나다 2곳, 멕시코 3곳의 경기장에서 열린다.

어릴 때는 축구 경기를 볼 때면 승부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지만, 점차 성숙해지면서 선수들이 능수능란하게 공을 다루는 모습에서 승부를 벗어난 경기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해지면서는 경기를 함께 구경하는 동료나 가족들, 그리고 응원하는 여러 사람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굳이 경기장을 찾게 된다.

◇화산 구릉지를 형상화한 ‘아크론 스타디움’

멕시코 과달라하라 아크론 스타디움
멕시코 과달라하라 아크론 스타디움
그렇게 보면 경기장이라는 공간이 단지 규정에 맞춰 시합하는 규범적 장소라기보다는, 선수나 관객이 서로의 행동이나 응원 소리를 주고받으며, 경기의 순간을 함께 스토리로 만드는 자부심의 공간으로 승화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번에 열리는 월드컵 경기장들은 대개가 6만 명에서 8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경기장이다. 객석 규모가 크거나 첨단 시설을 갖췄다거나 전광판이 세계 최대 크기라거나, 천장을 개폐식으로 여닫을 수 있다는 식의 기술적 특징으로 경기장의 모습을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체코, 멕시코의 시합이 열리는 멕시코 과달라하라 경기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이번 월드컵 경기장 중 가장 눈길을 끌 경기장이라고 평가했듯이, 그 예술적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이면서 조형 예술가인 장 마리 마소와 다니엘 푸제는 차가운 콘크리트 요새가 아니라 화산 모양을 본떠 솟아오르는 언덕이라는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동그란 경기장의 사방은 잔디 경사면으로 덮여 있어, 멀리 있는 숲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구릉을 느끼게 한다. 잔디는 또 여름철의 무더위에 대해 건물 내부를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단열효과도 갖는다.

또한 경기장 위에 흰 구름처럼 덮여있는 지붕은 땅과 하늘을 구별 짓는 시각적 효과도 크지만, 우천 시 비를 모아 경기장 내의 잔디에 물을 공급하는 친환경적 아이디어다. 경기장 내부는 빈틈없어 보이는 객석이 경기장을 시각적으로 하나의 일체화된 공간으로 만들어, 한 지붕 아래에서 펼쳐질 경기에 대한 몰입감을 최대로 높이며 기술적인 특징의 경기장들과는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돛단배를 연상시키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제주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제주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낸 우리나라에도 한국의 문화를 뽐냈던 경기장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주변 경관과 조화되는 아름다운 경기장으로 꼽히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이다. 일건 건축의 황일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풍림산업에서 시공했다. 제주도의 오름을 모티브로 해, 경기장 바닥은 지하로 파 내려가고, 지붕을 반쯤 경사진 텐트구조로 덮어 인근의 바다와 어울리는 돛단배의 모습이 연상되도록 설계했다.

바람에 대응하기 위한 막 구조를 하나의 큰 막으로 처리하지 않고 작은 조각을 이용해 조립식으로 만듦으로써 운동장이라는 내부 공간의 거대한 규모에 대응하도록 스케일을 낮췄다. 또 바람이 지붕을 타고 넘어감으로써 운동장 내부에는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게 했다. 운동장 내부의 마이크 소리가 방청석 전체에 깨끗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만들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에서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천국 같은 경기장’이라고 표현하며, 세계 10대 경기장의 하나로 보도한 바 있다.

사실 경기장은 정해진 설계기준에 따라 지어지기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지어진다. 특히 월드컵 경기장은 FIFA 규정으로 최소 2만 석 이상의 좌석을 확보해야 하고, 전용 구장이기에 축구장과 관람석 사이에 육상트랙을 설치할 수 없다. 화재나 비상시 모든 관람객이 8분 이내에 대피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하고, 우천이나 태양광과 열기를 피할 수 있도록 천장의 60% 이상을 덮어야 한다. 지붕을 덮음으로써 응원석의 함성을 더 크게 증폭시켜 실내분위기 같은 집중도를 높여주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처럼 과달라하라 경기장과 서귀포 경기장은 일반적인 경기장의 규정을 지키면서도, 단지 기술적으로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지역이 모두 유네스코 지정 자연보호구역이라는 점에 착안해 화산이나 오름, 숲과 바람 등, 그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생태적 여건을 고려해 건물을 디자인했다. 이 두 경기장은 관객이 단순히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으로 기억하는 추억의 장소가 되게 함으로써, 경기장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