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도 봄을 그리던 '즐거움의 화가'
英 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향년 89세로 영면
'예술가의 초상' 생존작가 최고가
말년 뇌졸중 딛고 끝까지 붓 안놔
평생 고정관념 깬 '영원한 청년'
'예술가의 초상' 생존작가 최고가
말년 뇌졸중 딛고 끝까지 붓 안놔
평생 고정관념 깬 '영원한 청년'
영국에서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받던 시절, 그는 ‘함께 부둥켜안은 우리 두 소년’(1961) 등 작품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김없이 담았다. 졸업에 필요한 논문도 “화가는 그림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며 내지 않았다. 학교는 결국 호크니에게 졸업장을 주기 위해 규정을 고쳤다.
1960년대, 탈색한 금발 머리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담배를 입에 문 그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교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대표작 ‘더 큰 첨벙’(1967)은 이 시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탄생했다. 방금 누군가 다이빙대를 박차고 뛰어든 것처럼, 공중으로 솟구친 채 화면에 멈춘 물보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물을 멈춰 있는 그림에 담으려 한 호크니의 실험이 담긴 작품이다.
1970년대 호크니는 ‘2인 초상’ 연작으로 전성기를 연다. 그림 속 두 사람의 자세와 시선, 둘 사이의 거리와 소품으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그려내는 식이다.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1972)이 대표적이다.
호크니가 자신의 연인과 이별한 뒤 그린 이 작품은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거리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은 201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달러(약 1372억원)에 낙찰됐다. 당시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이었다.
호크니는 평생 새로운 화풍을 추구했다. 1980년대에는 폴라로이드 사진 수십 장을 이어 붙인 콜라주 작품을 만들었다. 하나의 렌즈로 한 자리에서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 대신, 움직이면서 두 눈으로 천천히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오페라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하는가 하면 복사기와 팩스로 작품을 찍어내기도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는 아이패드로 작품을 그렸다.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화면이 스스로 빛을 내는 태블릿PC의 특징에 그는 매료됐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에는 약 3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말년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2012년 뇌졸중을 겪고도 작업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로 거처를 옮겨 아이패드로 봄이 오는 풍경을 매일 기록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그가 아이패드 연작을 발표하며 남긴 “봄은 취소할 수 없다”는 말은 전 세계인에게 위로를 건넸다.
노년의 그는 말했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는 게 내 그림의 목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