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확대, 기업에 마냥 '독(毒)'일까 [서이헌의 법과 기업]
집단소송 확대, 무엇이 쟁점인가
옵트아웃 채택·소급 적용 여부 관심
기업 형벌규정 정비 이뤄질지 주목
옵트아웃 채택·소급 적용 여부 관심
기업 형벌규정 정비 이뤄질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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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한가운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의 채택 여부다. 대표 당사자가 이기면 ‘제외 신고’를 하지 않은 피해자 전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방식이다. 미국이 이를 택하고 있다. 반면 독일·일본 등 대륙법계는 참여 의사를 밝힌 피해자에게만 효력이 미치는 ‘옵트인(opt-in)’ 방식을 유지한다. 옵트아웃을 전면 도입할지, 아니면 사건 유형에 따라 옵트인과 나눠 적용할지를 두고 논의가 팽팽하다.
다른 쟁점은 소급 적용 여부다.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안까지 집단소송법 적용대상으로 할지 여부가 논의 대상이다. 두 쟁점 모두 어느 쪽으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피해자들의 구제 범위와 기업이 안게 되는 위험의 크기가 달라진다. 일부 법안은 국민참여재판 도입까지 담고 있다.
같은 사건, 전혀 다른 결과
반면 같은 의혹을 둘러싼 국내 소송에선 항소를 제기한 7명에게만 1인당 7만원, 총 49만원의 배상이 인정되는데 그쳤다. 그 적정성을 둘러싼 분쟁이 여전히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수백만 명이 비교적 신속하게 실질적 구제를 받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49만 원을 두고 10년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집단적 피해를 구제하는 방식에 관한 제도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러한 제도 차이는 단순히 판결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분쟁이 어디에서 제기될지를 좌우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실제로 대규모 소비자 피해나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건의 경우, 국내에서 발생한 집단적 피해임에도 보다 실효적인 구제가 가능한 미국 법정을 택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고 있다. 제도의 차이가 분쟁의 결과 뿐 아니라 분쟁의 ‘장소’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지속될 경우 국내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이 미국의 법정에서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국내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규모의 해외소송 리스크에 노출되는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과도한 제재 규정도 함께 검토돼야
그렇지만 정작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다. 잘못에 대해 제재는 이뤄지되, 구제는 비어 있는 구조인 셈이다. 뒤집어 보면 집단적 피해를 민사적으로 회복하는 통로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모든 책임을 형벌로 묻는 무거운 관행을 덜어 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과도한 형벌규정의 정비와 함께 검토된다면 집단소송 확대를 단순히 ‘기업에 대한 압박’으로만 볼 수 없다.
물론 제도를 넓히는 일에는 신중히 따져야 할 대목이 많다.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합의를 노린 기획소송과 남소(濫訴)의 우려가 커진다. 소급 적용의 범위를 두고는 소비자 보호기관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옵트아웃 방식의 집단소송 제도를 처음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식 모델을 본떠 2005년 도입한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20년간 운용해 왔다. 그 과정에서 소송 허가 단계가 길어지고 손해액 산정과 입증이 까다로워 구제가 더뎠던 경험을 이미 겪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도입된 이후 대법원에서 첫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린 사실이, 그 더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업은 단순히 입법의 향방을 지켜보는 수준을 넘어, 제도 변화가 자사의 법적·재무적 리스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옵트아웃의 채택 여부, 소급 적용 범위, 적용 대상이 되는 피해 유형에 따라 과거의 행위까지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이 책임의 성립 요건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일단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그 파급력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분쟁 증가를 넘어 충당금 설정, 보험 구조, 투자 의사결정 등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가장 확실한 대비는 평소의 컴플라이언스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있다. 법을 준수하고 발생한 피해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본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