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은행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고환율에 원화로 표시되는 위험가중자산(RWA)이 3개월 만에 30조원 넘게 급증했다. 자본 건전성 악화로 생산적 금융과 주주환원 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 1분기 말 기준 RWA는 총 893조423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862조1248억원) 대비 3개월 만에 31조2982억원 증가했다.

원화 약세에 은행 건전성 악화 우려…위험자산 30조 증가
가파른 환율 상승세가 RWA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고환율은 은행 건전성 지표 악화로 직결된다. 은행이 보유한 외화 대출금과 외화 유가증권의 원화 환산 가치가 자동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주 자본을 RWA로 나눠 산출하는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끌어내린다. CET1은 은행의 핵심 건전성 지표로 통한다. 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은행 CET1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 1분기 말 국내 은행의 평균 CET1비율은 13.41%로, 전년 말보다 0.09%포인트 떨어졌다.

문제는 고환율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550원을 돌파하는 등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이후 17년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건전성 악화가 생산적 금융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일반적으로 기업대출은 가계대출에 비해 위험가중치가 높게 산정된다. 금융당국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환율 변수까지 더해지면 건전성 관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환율 상승이 주주환원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CET1 비율이 하락하면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RWA 관리 체계 정비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주가, 환율 등 시장지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하나은행은 보수적인 자산 운용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환율 수준별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적용 중이다.

한 시중은행의 리스크 담당 임원은 “고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건전성 관리 체계를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라며 “환율민감자산을 축소하는 등 자본 비율을 관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