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사태' 수사 본격화됐지만…무능한 선관위 처벌 못해
고의성 입증이 수사 성패 가를 듯
수요 예측 실패 등 단순 행정 착오나
무능함은 사법 처리 대상 안 돼
수요 예측 실패 등 단순 행정 착오나
무능함은 사법 처리 대상 안 돼
10일 법조계와 수사당국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전날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됐으며, 모두 27명의 수사 인력이 투입될 예정이다.
선관위 관계자가 투표용지가 모자랄 가능성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묵인했는지 등 고의성을 밝혀내는 게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의 합동수사본부가 곧바로 꾸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설치된 합수본은 대검찰청 선거수사지원과장 등을 지낸 김태훈 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본부장을 맡아 이끈다.
합수본 수사의 핵심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선관위의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가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표용지를 적게 공급하거나, 일부러 추가 투표용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직무 유기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현행법상 투표방해죄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형사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고의가 전제돼야 한다
반면, 직원들의 업무 태만 등 단순 실수인 것으로 밝혀지면 형사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투표용지를 적게 준비해 유권자의 투표를 막으려는 명백한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단순한 행정적 무능이나 예측 실패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치러진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조기 소진되면서 수많은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선관위를 향한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형법상 직무유기나 공직선거법 위반은 과실범을 처벌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 한 고의범만 처벌한다"며 "일부러 투표를 못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투표용지를 축소 주문했다는 내부 지시 문건이나 관계자 진술 등 확실한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선관위의 실무적 무능을 범죄로 규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방치했다'거나 '의도적으로 적게 배부하라'는 식의 윗선 지시가 드러나야만 기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수사는 선관위의 투표용지 발주 및 배부 과정 전반을 짚어보며 숨겨진 고의성을 찾는 데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은 선관위 내부망 이메일, 회의록, 실무자 간 통신 기록 등을 확보해 조직적인 방해 행위가 있었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뚜렷한 고의성이나 악의적 의도가 발견되지 않고 선관위의 단순 무능력과 행정 착오로 결론이 날 경우, 처벌 대신 선관위 지휘부를 향한 강도 높은 문책과 사퇴 요구 등 도의적·정치적 책임론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철만 되면 휴직자가 늘고, 선거가 끝나면 줄어드는 현상이 10년째 반복됐다.
전국 대학교 총학생회의는 6·10 민주항쟁 39주년을 맞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일제히 연다.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대학은 연세대·건국대·고려대·경희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숭실대·전남대·한국외대·홍익대·숙명여대·전북대·부산대·한양대 등으로 알려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