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동조합법 2·3조(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해 달라”는 하청 노조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개 하청 노조가 원청과 따로따로 교섭하게 해달라며 낸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절반 이상이 기각됐다.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확대해 달라’는 노동계 요구와 ‘수십, 수백 개 하청 노조와 교섭하느라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경영계 우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한국경제신문이 개정 노조법이 시행된 지난 3월 1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원·하청 교섭을 집계한 결과 431개 원청 사업장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았다. 이 중 원청이 자율로 교섭에 나선 곳은 37곳,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을 기다리는 곳은 123곳이다. 나머지는 하청 노조가 교섭 요구만 해놓고 관망하고 있다.

노동위는 원청의 사용자성은 대체로 인정했다. 원청에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달라는 ‘미공고 시정 신청’은 249건 접수됐고 이 중 80건의 판정이 나왔는데, 9곳을 제외하고 모두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라는 판단을 받았다. 교섭단위 분리 사건도 40건이 판정됐는데 ‘원청이 사용자가 아니다’고 판단한 사례는 1건뿐이었다. 결과적으로 120개 원청 중 110개(91.6%)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교섭단위 분리 판정에선 40건 중 교섭 분리가 인정된 사례가 18건이고 22건은 기각됐다.

쪼개기 교섭 우려 줄었지만…'오락가락 사용자성'에 기업 혼란
민간기업 사실상 100% 인정…지자체·공공기관엔 면죄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노동위원회의 판단도 뚜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을 요구받은 원청이 민간 기업인 경우 거의 100%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반대로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대체로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노동위는 경제계의 ‘하청 노조 간 쪼개기 교섭’ 우려를 의식해 교섭단위 분리 요청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 산업안전, 원청 사용자성 뚫는 ‘열쇠’

현재까지 노동위 판정이 내려진 사업장 120곳 중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곳은 10곳뿐이다. 이 중 8곳은 익산시, 울산시,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공공기관과 지자체다. 정부는 지난 2월 내놓은 노란봉투법 해석 지침에서 ‘법령 등에 따라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결정되는 경우’, 즉 정부·공공기관·지자체는 하청 근로자의 ‘원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결국 민간 기업 중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곳은 2곳에 불과해 사실상 노조의 완승이라는 평가다.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인정한 근거는 대부분 ‘산업안전’이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라는 논리다. 예를 들어 제조·건설업 대표 사례인 포스코와 포스코이앤씨 사건에서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관리가, 백화점·면세점 입점업체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처음 인정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사건에서는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와 작업환경 개선 등이 의제로 인정됐다.

아직 임금·수당, 복리후생, 인사권, 근로시간 등과 관련해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사건은 없다. 다만 이는 사용자를 일단 교섭 테이블에 앉히고, 협상 과정에서 의제를 확대하겠다는 노동계 전략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동위가 판단하지 않았다고 교섭 의제가 부정된 것은 아니다”며 “이후 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지속적으로 의제를 확대하려 할 것이며, 이에 대해 이견이 생겨 쟁의행위로 번질 경우 그 적법성을 두고 또다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 노조 간 견제에 교섭단위 분리는 신중

교섭단위 분리 사건은 판정 40건 중 기각이 22건으로 인용 18건보다 더 많았다. 당초 경영계에서는 하청 노조의 요청으로 무한 쪼개기 교섭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개정 노조법 시행령이 노사 관계 왜곡 가능성, 노조 간 갈등 발생 가능성 등을 교섭단위 분리가 가능한 요건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SK에너지, 에쓰오일, 현대제철 사건 등에서 교섭분리 요청을 기각했다. 각 하청 노조의 업종과 근로조건, 이해관계가 비슷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SK에코플랜트 사건에서 민주노총 소속 하청 노조가 한국노총 하청 노조와의 노선 차이, 갈등 관계를 강조하며 분리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위가 교섭권을 확대하는 개정노조법 시행령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이미 교섭권을 갖고 있는 대형 경쟁 노조가 노동위에 출석해 교섭단위 분리 반대 의견을 내는 등 노조 사이에 견제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노동위가 분리 판단에 부담을 느끼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현장에선 사용자성 판단 혼선

시행 3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의 혼선은 계속되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이 나오는 등 사용자성에 관한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북지노위는 포스코이앤씨 사건에서 건설 현장의 대표적 안전관리 수단인 툴박스 미팅(작업 전 위험예지활동)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보여주는 근거로 받아들였다. 반면 전남지노위는 타워크레인노조가 제기한 중흥건설 사건에서 툴박스 미팅이 사용자성의 증거가 아니라고 봤다.

경남지노위는 사용자성 판단을 회피한 사례다. 한화오션의 급식 협력업체인 웰리브 노조가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신청 사건에서 한화오션의 사용자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채 교섭요구 사실 공고 의무만 인정했다. 지노위 측은 법적 분쟁이 길어질 것을 우려해 사용자성 판단을 제외했다고 밝혔다. 한 공인노무사는 “유죄 판단을 내리지만 항소할까 우려돼 유죄 이유는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