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병' 고치는 임상 철학 시도…김영진 인하대 교수 별세
'분석철학'으로 시작해 '임상철학'을 시도한 김영진(金榮振) 인하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7일 오전 3시 26분께 일산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8일 전했다.

향년 86세.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고, 연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계명대 철학과 부교수로 부임했다가 1983년 인하대로 옮겨 2006년까지 강의했다.

1980년 계명대에서 "철학은 (독일식) 관념 철학이 아니라 (영미식) 분석철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해 논란을 일으킨 끝에 이 대학 '목요철학세미나'가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백승균 계명대 명예교수가 2020년 계명대신문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철학을 전공한 김영진 교수가 우리 학교에 부임하면서 철학과에 학문적 파장을 몰고 왔다.

그는 '분석철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철학을 들고서 독일 관념론이 주류였던 우리 학교 철학과를 뒤흔들기 시작했다"고 했을 만큼
파장이 컸다.

분석철학의 핵심인 과학철학의 방법론을 파고들었다.

인하대로 옮긴 뒤 한국분석철학회장을 역임했다.

고인의 연구는 임상 철학 제창으로 이어졌다.

퇴직 직전에 펴낸 책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2004)에서 육체적 질병과 정신질환 외에 세 번째 질환으로 '철학적 병'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견해만을 옳다고 신봉하는 광신주의, 다양한 종류의 논리적 오류,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가치관의 혼돈 등을 철학적 병의 사례로 제시하고, 이러한 "철학적 병을 진단하고 진단에 따라 적절한 치료와 처방을 하는 철학의 새로운 분야를 '임상 철학'"이라고 불렀다.

"철학은 치료"라는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문제의식을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적용해 철학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5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수많은 집회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수많은 TV 토론을 지켜본 결과 한국인들은 중증의 철학적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고인은 "한국인의 가장 심각한 질환은 도덕과 예절을 구분하지 못하는 윤리적 질환입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인들이 서구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지요.

부모나 스승의 잘못을 따지지 못하는 것은 예절일 뿐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도덕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있는 정직과 공정성, 형평성 등을 말합니다"라고 지적
했다.

한국인이 논리적 훈련이 안 돼 있어 지식인조차 일반과 보편, 모순과 반대, 애매와 모호라는 개념도 구별할 줄 모른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모든 낙태를 허용해선 안 된다'에 대한 논리적 반대(contrariety)는 '모든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이고, '어떤 낙태는 허용할 수 있다'는 반대가 아니라 모순(contradiction)인데도, 모순과 반대의 개념을 포괄하는 대립(opposition)과 반대를 혼동한다는 것. 영미 언론은 이를 엄격히 구분하는 반면, 한국 언론은 이를 무시한다고 질타
했다.

유족은 부인 윤선(연세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씨와 2남(김민규<의사>·김한규)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9일 오전 6시, 장지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 02-2227-7500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