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 도운 우석균 전 성수의원 원장 별세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을 돕는 등 보건의료 운동에 헌신한 우석균 전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가정의학과 전문의)가 7일 0시 30분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64세.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0년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뒤 '의대에는 학생운동이 없다'는 통념에 맞서 학생운동을 시도했다.

1983년 학교를 그만두고 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복학 후 1993년 전공의협의회를 만들 때 가담했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에서 활동하며 전공의협의회를 결성했다.

이후 보건의료단체연합 결성에도 참여해 인의협과 보건의료단체연합 대표를 지냈다.

양길승 전 녹색병원장이 1988년에 처음 문을 연 성수의원을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운영했다.

국내 최초의 '환자 당사자 운동'으로 평가되는 2001∼2003년 '글리벡 약가 인하 투쟁'을 도운 인의협 담당자였다.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가 2001년 국내에 출시한 글리벡은 만성골수백혈병 환자에게 생명줄과 다름없는 신약이었지만 1정(100mg)당 약 2만5천674원(하루 4알씩, 한 달 300만∼450만원)이라는 고가의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약가를 1정당 1만7천862원(월 214만3천440원)으로 고시하자 노바티스가 "한국에 약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고인은 당시 한국백혈병환우회를 찾아 강주성 사무국장 등에게 연대 투쟁을 제의했다.

2002년 말 환자들의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을 거쳐 2003년 1월 정부와 노바티스, 환자 단체 간에 글리벡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당시 30∼50%에 이르던 암 환자의 외래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20%로 낮추고, 최종 약가는 1정당 2만3천45원으로 고시하되 노바티스가 약값의 10%를 기금 형태로 환자들에게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고인은 202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술 채록 당시 강주성씨에게 인권위 농성을 권한 게 본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2025년 10월 17일 페이스북에 "내가 살면서 의사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석균 선생 때문일 것"이라며 "그는 당시 내가 싸우고 있었던 글리벡 약가 투쟁에 인의협도 함께 연대하자고 제안했었다.

글리벡 투쟁 이후 처음의 연대 제안이었다.

2001년 중반, 어느 날의 일이었다"고 썼다.

고인은 광우병 소 수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영리병원 등에도 반대했다.

'의료붕괴: 한국 의료시스템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2017), '괴물의 등장 : 코로나19, 조류독감, 자본주의의 전염병'(2025), '이윤보다 생명을:실천하는 의사 우석균 저작선'(2025) 등 저서를 남겼다.

유족은 1남2녀(우지안·우수안·우형안)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9일 오전 7시, 장지 마석 모란공원. ☎ 02-2072-2010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