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상자 속의 양'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의 한 장면. NEW 제공
인공지능(AI)과 인간, 차가운 금속으로 조립된 기계와 따뜻한 햇살을 품은 나무, 한 침대를 쓰지만 서로의 상처를 이해 못하는 부부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64) 감독은 신작 ‘상자 속의 양’에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을 하나의 ‘상자’에 밀어 넣는다.

이런 이질적 대립항들이 좁은 프레임 속 ‘공존’의 답을 찾을지는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5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상자 속에 원하던 양 한 마리가 있다며 기뻐했던 어린왕자의 시선을 영화의 힌트로 제시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 나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오는 10일 국내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은 지난 23일 막 내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다. ‘어느 가족’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거장 반열에 오른 고레에다의 17번째 장편 연출작.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부터 사회적 방임 같은 서늘한 비극까지 두루 포착해온 고레에다가 시대적 화두인 AI를 소재 삼아 선보인 근미래 공상과학(SF) 가족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자식 잃은 참척(慘慽)의 고통을 AI 휴머노이드로 대체해보는 발칙한 상상력, 가족의 범위를 인간을 넘어 무생물까지 확장 가능한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 등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영화를 두고 평단이 논쟁을 벌인 대목은 인간과 자유의지를 가진 휴머노이드가 도시와 숲이라는 흐릿한 경계를 그은 채 공존을 모색한다는 결말이다. AI가 인류 지성을 추월하는 순간 맞닥뜨릴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우려가 커지는 만큼, 이런 끝맺음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타협”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를 두고 고레에다는 “아무래도 인간중심으로 문명을 일군 서양에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영화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오는 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미디어캐슬 제공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나가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의 핵심 미장센인 건축 설계 모형을 예로 들며 “유리와 나무처럼 이질적 존재가 어우러지곤 한다”며 “공존은 분명 어렵지만 재밌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고레에다는 영화 산업에 깊게 관여하기 시작한 AI 기술에 대해서도 이런 자신의 생각을 투영했다. 그는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일은 AI가 맡을 거라 생각한다”며 “다만 (AI로만 만든다면) 영화들이 모두 닮은 꼴이 돼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AI와의 공존으로 효율을 꾀하되, 예술적 경계는 둬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촬영할 때 배우 배두나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자동차를 타는 장면은 (CG 없이) 바람을 느끼면서 찍고 싶다’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