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공개 한계 넘어 핵심 기술 보호 수단
영업비밀 침해 사건 무죄율 한때 30% 넘어
비밀유지계약·권한관리 사전 점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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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는 12년만에 푸드코트 내 음료 브랜드를 펩시에서 코카콜라로 바꿨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기술이 곧 국력이자 기업 생존을 담보하는 시대, 핵심 기술을 지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등록해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는 '특허', 다른 하나는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고 내부 자산으로만 은밀히 보유하는 '영업비밀(trade secret)'이다.
특허는 확실한 법적 보호를 제공하지만, 출원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술의 세부 내용이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경쟁사들이 합법적으로 기술을 모방하거나 우회 기술을 개발할 빌미를 주기도 한다. 코카콜라의 원액 제조법이 130년이 넘도록 베일에 싸여 있는 것처럼, 많은 글로벌 최상위 기업들이 독보적인 핵심 노하우나 제조 공정을 특허 대신 영업비밀로 숨겨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죄율 30%…기업들의 피눈물
필자는 2014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서 지식재산권(IP) 및 공정거래 수사를 전담하는 수석검사로 근무했다. 당시 일반 형사 사건의 무죄율이 1% 미만이었던 것과 달리, 영업비밀 침해를 다루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사건의 무죄율은 30%를 넘나들었다.
10건 중 3건 이상이 무죄로 귀결되던 원인은 당시 법이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 요구했던 엄격한 '비밀관리성' 요건에 있었다. 법원으로부터 영업비밀로 인정받으려면 기업이 그 기술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 보안 인프라가 취약한 중소·중견기업들은 기술을 빼앗기고도 "평소에 상당한 노력을 들여 비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아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당시 일관된 사건 처리 기준 유지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내 모든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사건이 필자에게 재배당됐다. 한 건당 수레 한 가득 찬 수사 기록들이 매일 방으로 밀려들 때면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기술 유출의 메커니즘을 파헤치고 복잡한 도면 속에서 범죄 혐의를 입증하던 집중적 경험은 역설적으로 필자가 대검찰청 선정 '부정경쟁(영업비밀) 분야 공인전문검사'로 인증받는 밑거름이 됐다.
물리적 보안만으론 부족하다
전문검사의 현미경 수사로도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필자가 기소한 한 전통주 업체 사건이다. 본사 담당자가 자사 서버를 악용해 도매점들이 입력한 거래처·매출·수금 정보 등 영업비밀을 무단 추출한 뒤 도매점 거래처의 반품을 유도한 사건이었다. 항소심은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본사 임직원과의 관계에서까지 이를 비밀로 엄격히 관리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한 것이다.
이 판결은 기업인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방화벽을 세우고 전산 시스템을 차단하는 물리적·기술적 보안만으로는 영업비밀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정보를 공유하는 주체 간 계약 관계, 내부 임직원 및 협력사와의 비밀유지의무 설정 등 법적 보완 조치가 촘촘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법은 정비됐지만 현실은 위태롭다
다행히 국회는 현실을 반영해 법을 꾸준히 개정해 왔다. 2015년 개정으로 비밀관리에 필요한 노력의 기준이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 노력'으로 완화됐고, 2019년 개정으로는 합리적 노력이 없었더라도 객관적으로 비밀로 관리된 사실만 인정되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문턱이 낮아졌다. 2024년 시행된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고의적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최대 5배로 높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개정해 국가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의 해외 유출 범죄에 대해 권고 형량 상한을 높이고 실형 선고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그럼에도 우리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다. 대기업 또는 해외 거래선과의 협력 과정에서, 혹은 핵심 임직원의 갑작스러운 이직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유출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밀 관리 상태조차 유지하지 못해 사후적으로도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비밀 보호는 이제 단순한 보안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걸린 법적 리스크 관리의 영역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후적 형사 고소만으로는 이미 유출된 기술의 가치를 온전히 회복할 수 없다. 임직원의 영업비밀 접근 권한 체계를 사전에 정비하고, 국내외 협력사와의 거래 시 비밀유지계약서를 치밀하게 작성하며, 정기적으로 영업비밀 컴플라이언스 진단을 받는 등 전문가의 조력이 절실한 이유다. 법률 전문가의 시각으로 미리 다듬어놓은 정제된 비밀유지계약서 한 장이 훗날 기업을 살리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제 기업인들이 먼저 전문가에게 손을 내밀어 자사의 소중한 자산을 스스로 지켜내야 할 때다.
서울대 법대 및 미국 NYU(뉴욕대) 로스쿨 LL.M.(법학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국제투자법 전공)을 수료했으며,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사법연수원 32기로 20년간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주UN대표부 법무협력관(부장검사), 법무부 국제법무과 검사, 서울중앙지검 외사부(현 국제범죄수사부) 검사 등 법무‧검찰의 국제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 국제통 검사였다. 아울러, 지식재산권(IP) 및 공정거래를 전담으로 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검사로서 대검찰청으로부터 부정경쟁방지법 분야 ‘공인전문검사’로 선정된 바 있고, 대전지검 형사1부장 재직 시 대검찰청으로부터 ‘우수 형사부장검사 ’로 선정되었다.
또한, 법무부 국제법무과 재직 시, 국제결혼 파탄 후 배우자 일방이 자녀를 외국으로 임의로 데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 조약인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의 이행법률 및 시행규칙 제정을 주도했고, 대한상사중재원 등과 공동으로 서울국제중제센터를 설립하는 등 법적 인프라 구축에도 크게 기여했다,
현재 법무법인 LKB평산 국제센터장으로서 국제형사, 국제중재, 국제상사, 국제가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적 사건에서 글로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