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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감정 문법'이다 [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아니다. 한류의 본질은 그런 데 있지 않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고의 자연경관을 가졌다. 브라질은 축구와 카니발로 세계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이탈리아 음식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세계적 위상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이 한류만큼 동시대적이고 복합적인 문화 열풍을 만들어냈는가. 그렇지 않다. 한류는 자연도 아니고, 특정 장르 하나도 아니다. 음악·드라마·영화·음식·패션이 동시에, 전 세계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류를 만들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지도 않다. 여기서 구분이 필요하다. 방탄소년단(BTS)나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덤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스타 개인에 대한 열광이다. 한국이라는 배경은 부차적이다. 실제로 많은 외국 팬들은 BTS를 좋아하지만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 사회에 관심을 갖진 않는다.
반면 '기생충'을 보고 한국 사회의 계층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오징어 게임'이 내포하는 한국 특유의 생존 경쟁 문화를 분석하는 사람들, 한국 드라마의 가족 서사와 감정 표현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맥락 자체에 끌리고 있다. 이쪽이 한류의 진짜 지속성을 만드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런 말을 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감정의 구조가 통하면 사람들은 연결된다는 선언이다. 한류가 세계로 퍼진 것은 한국어를 세계인이 배워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만든 감정과 서사의 문법이 국경을 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유의 감정 코드가 있다. 한(恨), 눈치, 빨리빨리. 표면적으로는 한국적이지만 그 안에는 보편적 인간 경험이 담겨 있다. 억눌린 감정의 폭발, 관계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긴장감,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피로감…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어디서나 계층이 있고, 가족이 있고, 경쟁이 있고, 체면이 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그 보편적 감정을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한류를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명제다.
한류는 한국인이 구성한 감정과 서사 구조에 대한 공감이다. 스타가 아니라 서사다. 외모가 아니라 감정이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리고 단순히 한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한국인이 오랜 시간 쌓아온 집단적 감정의 문법에 세계인이 공명하는 현상이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한류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스타는 늙고 트렌드는 바뀐다. BTS 이후가 없으면 K-팝은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감정의 문법이 살아 있는 한 한류는 계속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반대로 그 문법을 잃고 글로벌 시장만 좇기 시작하면, 한류는 브랜드만 남고 내용은 비어버린다.
한류의 위기는 인기가 식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 문법을 잊는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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