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유행? 인기 얼마나 가겠어 했는데"…한류의 '대반전' [K컬처인사이드]
한류, 얼마나 가겠어 했는데…라이프스타일로 정착
아태 지역 안정기 속 미주·유럽 경험률 10%p 내외 급증
한류 경험자 월평균 14.7시간 소비…16.6달러 지출
'한국 문화적 요소'가 핵심 기준…제작 국가 경계 넘어
아태 지역 안정기 속 미주·유럽 경험률 10%p 내외 급증
한류 경험자 월평균 14.7시간 소비…16.6달러 지출
'한국 문화적 요소'가 핵심 기준…제작 국가 경계 넘어
지난 6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멕시코 대통령궁 테라스에 모습을 드러내자 국내외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에서는 이들을 전설적인 아티스트들과 나란히 세우는 찬사가 쏟아졌다. 과거 멕시코 국립궁전 발코니에 서서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던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의 계보를 잇는 아티스트가 바로 방탄소년단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궁 앞 소칼로 광장에 운집한 5만여 명의 현지 '아미'(BTS 팬덤)는 멤버들의 등장에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멕시코 내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늘려달라 요청했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음악과 가치관은 멕시코와 한국을 하나로 묶어준다"며 환영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지역별 확산 양상의 변화다. 기존 한류의 텃밭이었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안정적인 수치를 유지하는 사이, 미주와 유럽 지역의 경험률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소비의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심화도 뚜렷하다. 한류 경험자 1인당 월평균 한국 콘텐츠 소비 시간은 14.7시간으로 전년 대비 0.7시간 늘었으며, 지출액 또한 1.2 달러(USD) 증가한 16.6 달러를 기록했다. 글로벌 콘텐츠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한류 콘텐츠의 소비 비중은 24.9%를 유지했다. 이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단순히 호기심에 한두 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계 지출과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한류에 고정적으로 할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음원 차트에서도 주류로서의 위상은 공고하다. 방탄소년단의 'SWIM'이 뮤직비디오 및 아티스트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등 K팝의 차트 지배력은 여전하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주요 국가에서 한국 콘텐츠는 OTT 플랫폼 내 TOP 100의 약 20~30%를 상시 점유하고 있다. '솔로지옥 시즌 5'나 '흑백요리사 시즌 2' 같은 K-리얼리티 예능이 동남아 차트 1위를 휩쓰는 현상은 한류가 생활 밀착형 콘텐츠로 완전히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콘텐츠 부문에서는 기존 메가 히트 IP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세대교체의 조짐도 포착됐다. '오징어 게임'(12.4%)과 '기생충'(8.4%)이 각각 드라마와 영화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지켰으나, 신작들의 추격세가 매섭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칠레,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선호 드라마 2위(4.6%)에 등극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킹 오브 킹스'가 5위에 신규 진입하며 성인층까지 아우르는 확장성을 보여줬다.
한류를 인식하는 기준 역시 '제작 국가'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콘텐츠 내부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응답자들은 한류 콘텐츠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한국 문화적 요소'(23.3%)를 1순위로 꼽았다. 이어 '한국인 출연진'(21.8%)과 '한국 배경'(19.1%)이 뒤를 이었다. 이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한국산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미학, 가치관, 생활 양식이 녹아있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 반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IP 통제권과 포맷 경쟁력 확보
수출 구조의 체질 개선도 과제다. 드라마와 K팝 중심에서 예능 포맷이 새로운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기획 단계부터 영화·공연·굿즈 등으로 IP 확장을 고려한 통합 설계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복면가왕'이나 '너의 목소리가 보여'처럼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문화 중립적 참여형 포맷' 개발을 촉진하고, 이를 글로벌 현지화 적합성 지표로 관리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한, 제작 단계부터 TV와 OTT, 극장, 디지털 플랫폼을 연계하는 '플랫폼 믹스' 전략을 반영한 산업 생태계 조성이 요구된다. 방송과 OTT를 아우르는 통합 기획 역량 교육과 해외 공동 제작 시 플랫폼 전략 컨설팅 등을 통해 글로벌 제작 역량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창식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은 "한류가 단순한 콘텐츠 유행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 고도화를 통해 변화하는 소비 환경과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류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을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2026년의 한류는 '경계 없는 확장'의 시기를 맞이했다. 제작 국가의 국적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스타일이 전 세계인의 공통된 취향을 저격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향후 한국의 문화 영토를 전 세계로 넓히는 강력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