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레버리지 의존 PE 시대 한계”…80조 사모펀드 전략 바꾼다 [ASK 2026]
“앞으로의 사모펀드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레버리지나 시장 유동성에 의존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ASK 2026 글로벌 대체투자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제는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업 펀더멘털 개선 역량, 장기적 가치 창출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시장 변동성 확대를 계기로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전략을 자본 규모 중심에서 산업 이해와 리스크 관리,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 중심으로 고도화하겠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투자 환경을 “산업과 자본의 흐름 자체가 재편되는 구조적 변화”로 규정했다. 그는 “과거에는 자본의 규모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장기적 안목과 리스크 관리 역량, 변화의 방향을 읽어내는 투자 철학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5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사모펀드(PE) 투자 규모는 약 80조원으로 전체 대체투자 자산의 약 34%를 차지한다. 그동안 사모펀드는 기금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핵심 축으로 역할을 해왔지만, 김 이사장은 AI 확산 이후 투자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존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며 “많은 기업이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 자체를 시험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에 따라 사모펀드 투자에서 단기 시장 흐름보다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장기 성장 가능성을 더 중시할 방침이다. 김 이사장은 “포트폴리오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AI 확산에 따른 고성장 산업과 구조적 변화의 수혜 분야에 대한 투자 기회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도입한 기준포트폴리오 체계를 기반으로 장기 수익률 목표를 명확히 하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같은 원칙은 해외 사모펀드 투자와 국내 벤처투자 전략에도 반영된다. 국민연금 사모펀드 투자 중 80% 이상은 해외 시장에 투자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도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 중심의 투자 기조는 유지할 계획”이라면서도 “높은 성장 잠재력이 기대되는 아시아 등 신흥지역에 대해서는 보다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세컨더리 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유연하게 수행하고, 우량자산을 저가에 매수하는 오퍼튜니스틱 전략도 병행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전략산업 분야에 대한 벤처투자를 늘린다. 국민연금은 올해 국내 벤처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에 역대 최대 규모인 4000억원을 배정했다. 김 이사장은 “이는 단순한 재무 투자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과 혁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용사 평가 기준도 단기 성과 중심에서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 역량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을 개정해 ‘수익의 질’을 새로운 평가 요소로 도입했다. 김 이사장은 “단기적인 수익률 수치보다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SG 요소도 투자 검토와 집행, 사후관리 등 의사결정 전반에 반영할 계획이다.

사모대출도 국민연금 대체투자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9년 다이렉트렌딩(직접대출) 투자를 시작한 뒤 사모대출 투자를 확대해왔고, 2024년에는 전담팀을 신설했다. 2025년 말 기준 사모대출 투자 규모는 약 20조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일부 시장에서 유동성 우려와 자산 건전성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기존 투자 자산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정교화하고 리스크 관리 체계를 지속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시장의 큰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함께 만들어왔다”며 “중요한 것은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과 장기적 안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분산투자 원칙 위에서 장기 자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