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으로 더 걷힐 수십조원의 초과 세수를 어떻게 써야 할지가 한국 사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세금 체계도 논란이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목적세가 미래를 위한 효율적 자원 배분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어촌특별세, 교육세 등에 필요보다 많은 세수가 자동으로 배정되기 때문이다.
19일 한국경제신문이 세제 전문가와 함께 추산한 결과 올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발(發) 증시 호황에 주식 거래가 폭증해 농특세가 정부 예상치(13조6000억원)를 넘는 20조원 이상에 이를 전망이다. 농특세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어려움을 겪을 농촌을 돕는다는 취지로 1994년 도입됐다. 증권거래액 등이 재원이다. 유가증권시장 매도액의 0.15%를 농특세로 걷는다. 농특세 급증 등에 힘입어 올해 초과 세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 전망치(25조2000억원)를 크게 웃도는 40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982년 교육재정 확충을 위해 도입한 교육세는 금융회사 수익의 0.5~1.0% 등이 재원이다. 올해만 5조6000억원가량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데 고등·평생교육, 유아교육, 지방재정교육교부금 등으로 들어간다. 이와 별도로 내국세의 20.79%가 자동 배정되는 교육교부금은 올해 초과 세수가 예상보다 더 늘면서 사상 처음으로 8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개선에 따른 초과 세수의 가장 큰 수혜자가 교육청과 교육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농특세와 교육세가 농촌 경쟁력 강화, 교육재정 확충이라는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고 보고 있다. 산업 혁신과 구조개혁 등에 써야 할 초과 세수가 소득이 늘어난 농가,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교육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고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재정을 투입해야 할 과제가 크게 늘었다”며 “반도체 호황으로 급증한 세수를 다른 분야에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했다.
증시 랠리에 농특세 20조 이상…교육세도 역대 최대 규모 관측 농촌·교육청 재정 비효율 우려…"수십년 된 목적세 전반 손질해야"
다음달 3일 치러지는 교육감선거에서 정근식 서울교육감 후보는 ‘유아교육 완전 무상화’와 ‘초·중·고교 교통비 전액 지원’을 공약으로 내놨다. 안민석 경기교육감 후보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100만원 규모 펀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감 후보들이 현금 살포 공약을 쏟아내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넘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이미 연간 70조원을 넘어선 교육교부금은 올해 더 비대해질 전망이다. 4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초과 세수의 일부가 자동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성장세를 살려나가기 위해 인공지능(AI) 인프라 등에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1980~1990년대 도입된 낡은 세제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묻지마 지원
교육교부금의 재원 중 하나는 교육재정 확충이라는 목적에만 쓰도록 한 교육세다. 교육세는 금융·보험회사 수익과 개별소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주세 등에 일정 비율을 부과해 걷는다. 1982년 5년 한시세로 도입됐지만, 1992년 영구세로 전환됐다. 교육세는 2022년 4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교육세를 5조6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증시 활황으로 증권사 이익이 늘어난 만큼 실제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도 재원으로 삼고 있다. 올해 초과 세수가 정부의 4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 예상 규모(25조2000억원)보다 15조원가량 많은 40조원 수준으로 늘어나면 교육교부금이 처음으로 80조원을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학령인구가 줄어 재정 비효율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2015년 623만원에서 지난해 1371만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남아도는 교육교부금을 쌓아 두거나 엉뚱한 설비투자를 하는 교육청이 늘어나고 있다.
◇남아도는 농특세도 농가만 도와
초과 세수를 잡아먹는 또 다른 목적세는 농어촌특별세(농특세)다. 올해 농특세 세수는 20조원 이상으로, 정부가 추경 때 산출한 예상치(13조6000억원)를 크게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유가증권시장 매도 거래대금은 4594조2110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매도액의 0.15%인 농특세율을 적용하면 농특세 수입은 6조8928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에서 걷은 농특세(1조8628억원)보다 270% 늘어난 수치다. 대체거래소(ATS) 거래 물량까지 포함하면 증시에서 걷힌 농특세만 이미 8조9000억~9조65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농특세는 농업 경쟁력 강화와 농촌 기반 시설 사업 등에만 써야 하는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로 들어간다. 정부는 이 돈이 남아돌아 다른 곳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 잉여금 2조원을 농업농촌공익기금과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로 돌렸다. 올해 농특세 수입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 남는 돈도 더 많아진다.
정부 안팎에선 농특세를 폐지하고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는 일반회계에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반회계로 돌리면 칸막이가 허물어져 다양한 분야에 효율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수 있어서다. 교육교부금 역시 지금처럼 내국세와 연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 수와 재정 수요를 반영해 유연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목적세는 개발도상국 시절 교육·교통·농촌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며 “지금처럼 인프라 수요가 상당 부분 충족된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재정을 강제 배분하는 구조는 재정의 효율적 운용을 막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