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라진 노동시장의 미래가 유튜브로 중계되고 있다. 화면엔 로봇 한 대가 등장해 40시간째(15일 오후 6시 기준) 택배를 집어 분류하고 있다.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업무를 멈추는 건 오직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다. 그마저도 충전기로 돌아가 자동으로 충전하고, 다른 로봇이 그 자리로 와 업무를 바로 이어받았다. 이를 본 한국의 시청자는 “쿠팡 일자리는 이제 없어진다” “인간 고용은 끝이다”고 댓글을 달았다. 로봇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미국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피규어AI가 만든 F.03이다.

◇ “사람보다 작업 빨랐다”

피규어AI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오전 10시부터 로봇 작업을 생중계했다. 사람처럼 두 팔과 다섯 손가락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 F.03은 금속 배출구에서 밀려 내려오는 골판지 상자와 비닐봉지 소포를 쉼 없이 분류했다.
"쉬는 시간도 없이 38시간째 근무"…충격 영상에 '경고'
로봇은 손으로 소포를 집어 확인한 뒤, 바코드가 적힌 송장이 위로 올라와 있으면 자동화를 위해 아래로 향하게 돌렸다. 그러고선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컨베이어벨트로 밀었다. 배출구에 물량이 엉켜 있으면 상체를 숙이고 팔을 뻗어 작업대로 끄집어 오기도 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쓰는 손과 유연한 팔 및 상체의 움직임은 사람과 다름없었다.

이름은 밥, 로즈, 개리, 프랭크. 이 4대 로봇이 한 조로 일했다. 첫 작업은 7시간45분간 이뤄졌다. 배터리가 떨어질 때가 되자 작업을 멈추고 원위치로 이동해 충전했다. 막 교대한 로봇은 간혹 송장이 위에 있는데도 그대로 상자를 벨트로 보내거나 헛손질하는 등 실수도 했다. 그러나 수십 분간 작업을 익히자 실시간으로 눈에 띄게 작업 효율이 올라갔다. 이렇게 40시간 동안 분류한 소포는 5만여개. 쉬지 않고 일해 인간 평균 작업량(1개당 3초)보다 빠른 2.88초에 1개의 소포를 처리했다.

이번 시연은 한 엑스(X·옛 트위터) 사용자의 도발로 시작됐다. 휴머노이드스콧이라는 이름의 사용자가 지난 12일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상 한계가 있다. 8시간 동안 사람의 개입 없이 일하는 모습을 입증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자, 다음날 브렛 애드콕 피규어AI 최고경영자(CEO)가 “우리 공장에선 이미 그렇게 일하고 있다”고 받아치며 생중계를 시작했다. 생중계는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겼고 회사는 “로봇이 8시간 연속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자신감을 입증했다. 생중계 24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작업 중인 로봇 뒤로 나타나 환호하는 모습도 화면에 잡혔다.

◇ 쇼 아닌 실무 보여줬다

피규어AI가 공개한 작업은 단순하지만 그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기와 모양, 위치가 모두 다른 택배를 AI가 자율적으로 인식하고 옮김으로써 실제 업무에 로봇을 투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피규어AI는 이번 작업이 원격 조종이 아니라 자체 AI 시스템 ‘헬릭스-02’ 기반의 자율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헬릭스-02는 사물을 보고 추론하는 시스템2, 추론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스템1, 그리고 균형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시스템0의 3개 축으로 구성됐다. 각각 인간의 뇌와 근육, 신경에 해당하는 체계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사용자가 “저 소포를 집어 바코드가 아래로 가게 올려놓으라”고 지시하면 로봇은 카메라 영상을 바탕으로 어느 손가락을 어떤 각도로 움직일지 계산한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위치에 놓인 물체를 일정 궤적으로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F.03은 휴머노이드가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한 뒤 손으로 물체를 잡고 매번 달라지는 물체의 방향을 판단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간 유니트리 등 중국 로봇 기업이 뒤돌기·복싱·체조 등 각종 기예를 선보였지만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은 저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시연은 더욱 주목받았다. 피겨AI는 현재 F.03을 2만4760달러(약 37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안정훈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