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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시간을 머금은 돌의 침묵…사진에 담긴 제주의 원초적 美
김용호 작가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 제주, 다시 보다-유현>
드러내지 않는 본질적인 아름다움 '유현'
추사·서경덕 등 옛 선비들이 강조한 미학
제주 하늘 땅 사람 돌에서 찾은 '유현' 기록
제주돌문화공원에서 7월26일까지 전시
6월12일엔 산책·정가·연극 공연 등 행사
<남국재견南國再見 : 제주, 다시 보다-유현>
드러내지 않는 본질적인 아름다움 '유현'
추사·서경덕 등 옛 선비들이 강조한 미학
제주 하늘 땅 사람 돌에서 찾은 '유현' 기록
제주돌문화공원에서 7월26일까지 전시
6월12일엔 산책·정가·연극 공연 등 행사
지난달 25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용호 작가(70)의 사진영상전 ‘남국재견南國再見: 제주, 다시 보다-유현’은 제주의 자연이 축적한 시간의 층위를 다시 뒤집는다. 우리가 알던 제주의 얼굴을 완전히 낯설게, 깊이 마주하는 기록들이 펼쳐진다.
드러내지 않는 본질적 아름다움-유현(幽玄)
그는 풍경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제주의 거친 바람, 검은 현무암, 눈과 비, 생과 사의 경계를 품은 바다 등 극단적인 요소들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알던 제주의 풍경이라고 하기엔 낯설다.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동자석,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호해진 형상들, 사진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풍경까지.
과도한 연출을 배제하고 돌과 나무, 하늘과 바람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만을 남긴 이번 작업은 옛 선비들의 미학적 태도와도 닮아 있다.
제주의 사계와 붉은 바다, 그리고 천지인
작가는 설문대할망 설화부터 조선시대의 유배사, 현대의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깊은 상처를 사진 이면에 녹여냈다. 특히 붉은 파도와 검은 현무암은 고립과 억압의 역사를 견뎌온 제주인의 견고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전시실 한가운데 흰 모래와 자갈 등을 오름처럼 쌓아 올린 곳에 붉은 바다의 영상이 투사된다. 파도가 용암이 되고, 용암이 물결치며 작품에 리듬을 더한다.
“제주의 바다는 늘 평온하지 않고,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기억들이 출렁입니다. 제주는 오랫동안 배로만 오갈 수 있었던 섬이자 유배와 단절, 억압의 역사를 견뎌온 고립된 공간이었습니다. 제주로 향하는 바닷길에서 마주한 파도는 마치 한라산의 활화산에서 분출되는 붉은 용암처럼 거센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고, 제게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바다를 건너야 했던 수많은 제주인의 두려움과 결단, 그리고 죽음을 건너는 기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붉음은 기억의 색이며, 여전히 맥동하는 제주의 상처이자 생명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뜨거웠던 것이 식으며 만들어진 검은 바위는 그 바다를 건너 살아남은 이들의 형상처럼 상처를 숨기지 않고 견뎌내며 견고한 생명력을 가진 제주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 작업은 제주의 비극을 재연하기보다 죽음의 바다를 통과한 이후에도 돌처럼 남아 끝내 부서지지 않은 존재들의 침묵과 지속되는 삶의 무게를 바라보는 기록입니다.”
일부 작품은 한지에 인화돼 회화적 정서가 짙게 드러난다. 이번 작품 중 일부는 오는 9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서 깊은 국립박물관 오텔드라마린의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에 초청받았다. 이번 전시는 7월 26일까지 열리며, 6월 12일에는 전시회를 기념해 특별한 행사들이 마련된다. 오후 1시30분부터 <정원의 황홀> 저자 윤광준과 함께 돌문화공원을 둘러보는 숲속 볕뉘산책이 열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게릴라 형식으로 진행되는 강은일 해금, 정마리 정가 공연이 있다. 오후 6시에는 연극인 박정자 씨가 출연하는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특별공연이 설문대할망전시관 야외무대에서 펼쳐진다.
제주=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