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한때 그는 'IQ 162의 노부스 콰르텟 비올리스트'로 불렸지만 이제 수식어가 바뀌었다. 2024년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지휘자'로 불리고 있다.

말코 콩쿠르 우승 이후 2년 만에 이승원(36)은 지구촌 무대를 누비는 지휘자로 우뚝 섰다.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무대를 앞둔 그를 최근 만났다.

미국에서 체득한 '아메리칸 사운드'

이번 연주회의 주제는 '20세기 미국 작곡가'다. 아이브스, 바버, 번스타인, 거슈윈. 국내 정기연주회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레퍼토리다. 특히 바버의 첼로 협주곡은 국내서 실연으로 접하기 어려운 곡이다. 선곡의 배경엔 그의 이력이 깔려있다. 이승원은 최근 3년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부지휘자 및 수석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미국 음악의 정체성을 체화했다.

"미국 오케스트라는 컴팩트하고 정교한 소리를 냅니다. 건조한 듯하면서도 압축된 특유의 그루브가 있죠. 한국인이 아리랑의 정서를 가장 잘 살리듯, 미국 음악도 그들만의 바이브가 있어요. 현지에서 배운 미국 사운드를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세계가 구애하는 K-지휘자

말코 콩쿠르 우승 이후 그의 일정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승 특전으로 24개 오케스트라와의 공연 기회를 얻었다. 클라우스 메켈레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해리슨패럿의 유일한 한국인 지휘자가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이번 시즌에만 23개 오케스트라와 데뷔 무대를 가졌다. 2028~29시즌 지휘 요청까지 더해 향후 몇년간 스케줄이 빼곡히 채워지고 있다.

세계를 누비며 국가별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읽는 눈도 생겼다. "북유럽은 순수한 소리와 단원들의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돋보입니다. 이탈리아는 리허설 때 여유롭다가도 무대 위에서 뜨거운 불을 뿜죠. 독일은 작곡가에 대한 경외심이 남달라요. 한국 악단은 지휘자 역량에 따라 소리의 색채가 극적으로 변하는 곳이에요. 단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상상 이상의 사운드가 터져 나옵니다."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그가 생각하는 지휘의 본질은 경청과 결단이다. 직접 소리를 내지 않는 유일한 무대 위 존재. 단원들이 스스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게 지휘자의 진짜 실력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곡에 대해 1초의 망설임도 없는 확고한 해석도 필수다.

"지휘자가 1초라도 망설이면 100명의 단원은 즉각 준비 부족을 직감합니다. 제가 멍하니 보내는 3초는 단원 전체로 치면 300초를 뺏는 것과 같아요. (지휘란) 그만큼 잔인하고 무서운 세계예요. 재능보다 완벽한 준비가 먼저입니다."

그는 지휘를 보이지 않는 소리와의 '교감'으로 정의한다. 지휘자들 사이엔 "소리가 지휘봉에 감긴다" 혹은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있다고. 제스처 하나에 오케스트라가 반응하고, 악단의 호흡과 완벽히 일치하는 그 순간. 지휘자도 무대 위 희열을 느낀다.

수백 번의 반복
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이승원 / 사진. ⓒShin-joong Kim/MOC
그는 천재적인 암보 능력과 절대음감으로 유명하다. 세계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할 만큼 뛰어난 두뇌는 지휘자로 곡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음의 규칙을 익히는데 유리하다. 절대음감은 특히 어려운 곡을 배울 때 강점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강조하는 건 재능이 아닌 노력이다. 암보로 공연 가능한 60여 곡의 레퍼토리는 모두 수백 번씩 악보를 파고든 결과다.

"모차르트 교향곡은 일주일, 말러 같은 대곡은 한두 달 집중해서 외웁니다. 하지만 외우는 게 다가 아니에요. 거장들도 악보를 수백 번씩 보죠. 지휘는 동작이 아니라 소리와의 교감이거든요. 제스처 하나에 오케스트라가 반응하고, 지휘봉에 소리가 감기는 그 순간을 위해 악보를 보고 또 봅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