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풍 영상'으로 트럼프 조롱…'밈' 앞세운 이란의 반격
이란 정보전 새 무기 레고풍 영상
AI 밈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 조롱
미국 대상 여론전 공세 강화
AI 밈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 조롱
미국 대상 여론전 공세 강화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친정부 단체와 외교 공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레고 스타일로 묘사한 AI 영상들을 제작·배포하고 있다. 이들 영상은 미국의 전쟁 목표를 조롱하고, 미국 사회의 분열을 키우며, 선전과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WSJ는 "이란이 인터넷 밈 전쟁을 벌이기 위해 AI 생성 레고 선전물을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영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상시키는 레고풍 해적 선장으로 등장한다. 미국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고 이란 항구를 봉쇄하려 하지만, 오히려 미국 선박이 침몰하는 장면이 담겼다. 다른 영상들은 이란의 반격 속에 트럼프가 두려움에 땀을 흘리는 모습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을 조종하는 꼭두각시 연출을 담았다. 상당수 영상에는 모욕적인 힙합 가사가 붙었고, 일부는 반유대주의적 요소를 포함했다.
이 콘텐츠는 이란의 기존 대외 선전 방식과 다르다. 과거 테헤란의 메시지는 이슬람 혁명에 대한 헌신, 시아파 순교 상징, 1979년 혁명에서 비롯된 소련식 반미 도상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서방 대중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관계대학원의 이란 미디어 전문가 나르게스 바조글리는 "이란 지도부가 오래전부터 기존 선전 방식의 한계를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바조글리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약 10년 전부터 젊고 세계화된 청중에게 맞는 친이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미디어 제작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접근은 구세대의 저항을 받았지만, 2월 말 전쟁이 시작되고 이란의 오래된 지도자 세대가 살해되면서 저항이 빠르게 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전면적으로 콘텐츠를 내보낼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이들이 글로벌 팝문화를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레고풍 콘텐츠는 덴마크 레고 회사와 관련이 없다. 다만 AI를 활용해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레고 스타일로 구현함으로써 전 세계에 익숙한 디자인 언어를 이용하고 있다. ‘레고 무비’와 ‘레고 배트맨 무비’ 같은 애니메이션을 접한 국제 청중에게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려는 전략이다. 이 영상 상당수는 처음에 페르시아어로 ‘폭발 뉴스’를 뜻하는 ‘아크바르 엔페자리’라는 이름을 썼다가 영어명 ‘익스플로시브 미디어’로 바꾼 조직이 내보내고 있다.
익스플로시브 미디어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외부 개입 없이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WSJ는 이 조직이 이란 통치자들의 승인 아래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며, 정부의 재정적 도움도 일부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란은 언론 통제가 심하고, 전쟁 초기 정권이 거의 전면적인 인터넷 차단을 시행한 뒤 친정부 인사와 기업 일부에만 인터넷 접근을 허용했다. 이란 대사관과 국영 기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뉴스 사이트도 이들의 콘텐츠 확산을 도왔다.
네덜란드 주재 이란대사관이 공유한 영상은 네타냐후를 영화 ‘토이 스토리’ 속 소년처럼 묘사했다. 이 소년이 트럼프 모양 인형을 갖고 놀며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너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한다”고 말하는 구성이다. WSJ는 이를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설명했다.
온라인 반응도 커졌다. 친이란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는 싱크탱크 전략대화연구소의 브렛 셰이퍼 선임국장은 "이 계정들이 유명 인사에게서 기대할 만한 수준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전쟁 전과 비교해 이들 계정의 온라인 참여는 30배 증가했다. 셰이퍼는 이 전략이 트럼프와 미국을 조롱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란 측이 커뮤니케이션을 지나치게 엄숙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