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장기화로 석유제품 가격이 20% 넘게 상승하면서 지난 4월 소비자물가가 1년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사진은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가격 안내판.  /문경덕 기자
중동 사태 장기화로 석유제품 가격이 20% 넘게 상승하면서 지난 4월 소비자물가가 1년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사진은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가격 안내판. /문경덕 기자
올 4월 소비자물가가 1년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뜀박질하면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20% 넘게 상승한 영향이다. 미국과 이란이 6일 사실상 종전에 합의해 국제 유가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전쟁이 발발하기 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비스 물가로 번진 ‘중동 쇼크’

유가 폭등이 끌어올린 물가…최고가격제 없었다면 4% 육박
국가데이터처가 이날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37(2020년 100 기준)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 올랐다. 2024년 7월(2.6%) 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물가를 끌어올린 것은 21.9% 급등한 석유제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뜀박질한 2022년 7월(35.2%) 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품목별로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각각 21.1%, 30.8% 뛰었다. 지난달 석유제품의 물가 기여도는 0.84%포인트로 전체 물가 상승 폭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석유제품을 제외하면 물가 상승률이 1.8% 수준이라는 의미다.

국제 유가 급등 여파는 항공과 여행 서비스 가격으로 빠르게 번졌다. 지난달 국제항공료는 유류할증료 인상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9% 뛰었다. 5월 유류할증료 상승 폭이 4월보다 커진 만큼 국제항공료 오름세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5월 왕복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거리에 따라 15만~112만8000원으로 책정했다. 전달(8만4000~60만6000원)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항공료가 급등하며 해외 단체여행비도 11.5% 인상됐다.

중동 사태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오르자 세탁료도 8.9% 뛰었다.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바닥재, 벽지, 페인트 등이 포함된 주택 수선 재료 가격도 3.7% 올랐다.

2.6%인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재정을 투입해 물가를 억누른 결과로 평가됐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로 4월 물가 상승률이 1.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책 효과를 제외하면 4월 물가 상승률은 3.8%라는 뜻이다.

◇정책 효과 제외하면 3%대 진입

이란혁명수비대가 이날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결정하며 종전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단기간 내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 달째 이어진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글로벌 원유 재고가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날 S&P글로벌에너지는 지난달 세계 원유 재고가 약 2억 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통상적인 월간 글로벌 재고 변동 폭은 수십만~100만 배럴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원유 재고가 8년 만에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식탁 물가 급등 조짐과 ‘칩플레이션’(반도체+인플레이션) 징후도 포착됐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쌀(14.4%), 달걀(6.4%), 돼지고기(5.1%), 국산 소고기(5.0%) 등의 가격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가축 전염병이 확산한 데다 사료값도 오른 영향이다.

지난달 수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4% 올랐다. 조기(16.4%), 고등어(6.3%) 등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선물 수요가 많은 컴퓨터 가격은 19.4% 뛰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소비자 가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운동용품(15.4%)과 보험서비스 요금(13.4%)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향후 식품 물가가 더 뛰어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4일 한 콘퍼런스에서 “비료 가격이 1년 만에 30∼40% 오른 만큼 식품 가격이 3~6%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익환/김주완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