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필하모닉은 말러 음악에 자부심이 있다. 말러 교향곡 4번과 8번의 세계 초연을 맡았던 악단이라서다. 올 9월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는 1989년생 스타 지휘자인 라하브 샤니도 말러가 각별하다. 그에겐 2013년 말러 지휘 콩쿠르 우승 이력이 있다. 뮌헨 필과 방한한 그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교향곡도 말러였다. 콩쿠르 우승을 안겨줬던 교향곡 1번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포옹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포옹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이날 공연은 샤니와 조성진의 협연으로도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연 첫 곡은 협연 없이 악단이 소화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서곡. 길이가 4분에 불과한 이 곡만으로도 뮌헨 필은 악단 특유의 풍성하고 공간감이 넓은 음색을 드러냈다.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샤니가 “풍성함과 깊이”를 악단의 특색으로 소개할 만했다. 제1·2바이올린은 각각 샤니의 왼편과 오른편에 자리해 무대 앞 열을 차지했다. 응집력을 다소 희생하는 대신 공간감 넓은 소리를 내기 좋은 배치였다.

화려한 피아노와 수수한 클라리넷의 대조

서곡이 끝나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무대에 올랐다. 샤니는 뮌헨 필하모닉에서 맡았던 첫 정기 연주회에서 조성진과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자리에 앉은 조성진과 눈빛을 주고받은 샤니는 곧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지휘를 시작했다.

서주가 별 군더더기 없이 끝나자 곧 조성진이 명쾌하면서도 또렷한 고음으로 끼어들었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드러내는 민첩함의 정도가 비슷해 음악은 유기적으로 흘러갔다. 조성진의 하행 글리산도(미끄러지듯 음들을 이어가며 연주하는 주법)는 또렷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모범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2악장에선 피아노가 더 앞으로 치고 들어왔다. 피아니스트는 명료한 타건으로 고음을 분명하고 세밀하게 분해했다. 반면 클라리넷 수석인 알렉산드라 그루버는 섬세함을 지켜가며 소박한 소리를 연출했다. 클라리넷의 수수함과 피아노의 화려함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느라 벌어진 공간은 폭넓게 짜인 현악이 채웠다.

현은 여림이나 박자 표현이 매우 정밀하진 않았지만 이따금 솟아 나오는 감정 표현은 확실했다. 비올라의 피치카토(한 음씩 튕겨 연주하는 주법)는 섬세하다가도 우악스러운 면이 있어 장난기가 느껴졌다.

마지막 악장에선 페달링을 잘 살린 저음과 명료한 고음을 병치한 조성진의 접근법이 돋보였다. 다만 프레이징을 풀어가는 과정에선 피아노와 악단의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때가 있었다. 피아노는 루바토를 과감히 살려 민첩하게 리듬을 연출했지만 현은 꽤 정직하게 박자를 풀어가며 우직한 인상을 줬다. 이따금 피아노가 앞지르고 현이 뒤따르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지만 협주곡의 끝이 가까워지면서 협연자와 악단의 호흡이 다시 긴밀해졌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악단과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악단과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협주곡을 마친 조성진은 그룬펠터가 편곡한 ‘비엔나의 저녁’을 앙코르로 선보이며 베토벤의 초기 작품으론 온전히 드러내기 어려웠던 낭만주의적인 화려함을 선사했다. 부드럽지만 또렷함을 지킨 소리에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는 타건을 더한 그의 연주는 강세와 속도감이 더해져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안정적인 기교가 멋들어졌던 피아노 독주가 끝나자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큰 환호가 쏟아졌다. 누구라도 이 피아니스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말러가 건넨 천국행 티켓

공연 2부 연주곡인 말러 교향곡 1번은 ‘신중한 말러’였다. 속도감을 경계하며 섬세하게 소리를 아꼈다가 드러낸다는 면에서 그랬다.

“요즈음 악단은 빨리 연주하는 경향이 많은데 뮌헨 필은 여유가 있다”고 한 샤니의 발언과 결이 맞는 연주였다. 선율의 매력을 마지막에 집중적으로 담으려는 의도였는지 자연을 묘사하는 1악장에서 현악기는 돌출을 절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처럼 초목을 은은하게 표현하는 인상이었다. 현이 주선율의 희망적인 상승 음률보다 금관의 우렁참이 도드라진 점은 색달랐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청년의 혈기가 드러나는 2악장에선 베이스 8대가 에너지를 표현할 때와 수그릴 때를 확연히 구분하며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이올린과 목관이 넘실거릴 땐 취기가 섞이며 춤곡의 분위기를 풍겼다.

3악장은 과거의 화양연화를 회상하는 듯했다. 목관과 현악기가 섬세한 하강 선율로 아련함을 표현하면 팀파니와 트럼펫이 튀어나와 이 아련함이 이젠 환상이라는 듯 경쾌한 리듬을 내고 사라졌다. 바이올린 악장의 가냘프면서도 약간은 기괴한 독주가 입체감을 더했다. 씁쓸한 추억으로 오늘을 달래는 인간의 나약함을 떠올릴 만한 곡조였다.

4악장의 시작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 놓인 연옥을 그렸다. 무시무시한 호통 같은 심벌즈 소리 뒤에 여러 악기 소리가 쏟아지며 긴박감과 장엄함을 섞어 놓는 게 지옥행과 천국행을 놓고 심판을 기다리게 된 인간을 그리는 듯했다. 잿빛 구름 사이에 비치는 희멀건 빛처럼 먹먹하면서도 밝은 호른 소리가 낮게 깔리고 나서야 음악에 희망감이 돌았다. 곧이어 나타난 따뜻한 바이올린 소리는 흐린 하늘을 뚫고 내려온 천사의 손길이 됐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악단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뮌헨 필하모닉 공연에서 악단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출처. 빈체로 ⓒ WON HEE LEE
종종 트롬본의 단호한 경고음이나 비올라의 박력 넘치는 활질이 위기감을 키웠지만 마지막은 천국행이었다. 일어선 호른과 트롬본 주자들, 트레몰로를 몰아치는 바이올린, 쉼 없이 두드리는 트라이앵글이 한껏 고조된 밝은 에너지를 터뜨렸다.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간 승리로 풀어낸 여정이었다.

악단의 앙코르는 아리랑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관객 절반가량이 일어나 화답하자 샤니와 단원들의 얼굴엔 행복감이 가득했다. 뮌헨 필은 6·7일 예술의전당, 8일 아트센터인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도 관객을 만난다. 이어 조성진과 바다를 건너 11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공연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