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혁 기자
사진=최혁 기자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전체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섰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2005년 12월 이후 약 20년 만이다. 이 기간 퇴직연금을 예금성 상품에 방치한 가입자와 상장지수펀드(ETF)를 적극적으로 매수한 가입자 간 수익률 격차는 여덟 배 넘게 벌어졌다. 수십 년간 굴려야 하는 노후자금 특성상 투자 전략에 따라 훗날 자산은 더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 ‘연금 고수’ 연간 수익률은 64%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실적배당형 1년 수익률(1년)은 지난 1분기 기준 평균 22.79%로 집계됐다.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평균 2.87%에 그쳤다. 이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대 초반임을 고려하면 원리금보장형의 실질 수익률은 1%도 안 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두 유형 간 수익률 격차는 7.3%포인트(2.5배)였지만 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잠자는 퇴직연금 깨워라"…ETF 굴린 40대 수익률 年 64%
특히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에서 이런 추세가 뚜렷하다. 실적배당형과 원리금보장형 간 수익률 격차는 2019년 5.8%포인트(4.2배)에서 지난해 말 17.2%포인트(6.8배), 올해 1분기 19.9%포인트(7.9배)로 확대됐다. 5년 수익률 기준으로 보면 2019년에는 실적배당형(연 1.94%)과 원리금보장형(연 1.87%)이 비슷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실적배당형(5.83%)이 원리금보장형(3.03%)을 2%포인트 이상 앞섰다.

금융권 관계자는 “7년간 수익률을 비교해도 실적배당형의 투자 성과가 월등히 좋다”며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면 원리금보장형에만 퇴직연금을 방치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은 ‘연금 고수’와 일반 가입자의 수익률 차이는 더 크다. 지난해 6월 기준 증권사 DC형 가입자 투자 상위 그룹의 40대 평균 수익률은 64.3%였다. 같은 연령대 전체 평균(6.0%)의 열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들은 퇴직연금 자산의 87%를 ETF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투자하는 연금’으로 시장 변화

수익률 괴리가 갈수록 커지자 연금 자금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증권사 DC·IRP 계좌의 실적배당형 적립금은 65조8235억원이었다. 원리금보장형(31조3252억원)의 두 배 이상 규모다. 2023년까지만 해도 원리금보장형(23조4663억원)이 실적배당형(19조6481억원)보다 많았으나 이듬해 실적배당형이 원리금보장형을 추월한 이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2023년 말 이후 원리금보장형 적립금이 33.5% 늘어나는 동안 실적배당형은 235% 급증하며 연금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모으는 연금’에서 ‘투자하는 연금’으로 바뀌는 변화는 투자 내역에서도 확인된다. 미래에셋증권의 DC·IRP 계좌 내 잔액 상위권에서 예금성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2024년 말 잔액 상위 5위권에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2개 포함됐다. 하지만 2025년 1개로 줄었고,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아예 사라졌다. 그 대신 잔액 1~5위 모두 ‘TIGER 미국S&P500’ ‘TIGER 반도체TOP10’ 같은 주식형 ETF로 채워졌다.

순매수 상위권에도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찾아볼 수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순매수 3위에 ‘KB손해보험원리금보장형 이율보증형’ 같은 원리금보장 상품이 이름을 올렸지만, 올해는 모두 실적배당형이 차지했다. 올 들어 퇴직연금 계좌에 가장 많이 추가된 상품은 ‘TIGER 반도체TOP10’이다. 그 뒤를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 ‘TIGER 미국S&P500’ ‘KODEX 코스닥150’ 등이 이었다.

양지윤/김진성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