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비었던 뉴욕 맨해튼의 상징…명품으로 부활한 배경
맨해튼 상징 나인 웨스트 57번가 빌딩
임차인 몰리며 옛 명성 회복
미술관 조성에 고급 식당 유치
'최고급 편의시설'로 가치 높여
"고객이 원하는 것에 주력했다"
임차인 몰리며 옛 명성 회복
미술관 조성에 고급 식당 유치
'최고급 편의시설'로 가치 높여
"고객이 원하는 것에 주력했다"
건물 내 미술관 조성이 '신의 한수'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욕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독특한 경사형 외관으로 유명한 50층짜리 ‘나인 웨스트 57번가’는 반세기 동안 여러 위기를 거쳤다. 1970년대 뉴욕시 재정 위기 직전 문을 열었고, 2008~2009년 금융위기 때는 건물이 절반가량 비기도 했다. 팬데믹이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던 2020년 대형 임차인이었던 사모펀드 KKR까지 빠져나가면서 한때 미국 최고급 오피스 주소지로서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오피스 시장의 정점에 섰다.이런 변화는 뉴욕 오피스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과거처럼 주소지의 상징성만으로는 임차인을 끌어들이기 어려워지자, 건물주 솔로비예프 그룹의 스테판 솔로비예프 회장은 건물의 격을 높이는 데 5000만달러(약 74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그는 최신 건물들과 경쟁하기 위해 2만제곱피트 규모의 체육관을 넣고, 사우나와 냉수욕 시설도 들였다. 여기에 피카소와 마티스, 미로 작품을 포함한 가족 소장품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조성했다.
고급 레스토랑 입점...작은 면적 임차에도 적극적
고급 레스토랑도 강화했다. 솔로비예프는 최근 뉴욕 시내 인기 식당 브랜드로 알려진 캐치 호스피털리티 그룹과 입점 계약을 맺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편의시설이 핵심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거의 만실 건물과 반쯤 빈 건물을 가르는 차이가 됐다"고 말했다.운영 전략도 바뀌었다. 미국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신규 오피스 임차 면적은 약 1억2000만제곱피트로 2018년 중반 이후 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이 회복은 대형 거래 복귀보다는 '소규모 계약'이 대거 늘어난 데 힘입은 것이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맨해튼 미드타운 프리미엄 오피스 공실률은 올 1분기 16.4%로 2년 전 22.3%에서 크게 낮아졌다. 반면 미국 전체 오피스 공실률은 같은 기간 22.1%에서 22.8%로 오히려 올랐다. 뉴욕에서도 최고급 자산으로 수요가 쏠리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차인이 뭘 원하는가'에 주력
이 빌딩의 회복에는 가족 경영의 변화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나인 웨스트는 부동산과 현대미술 안목으로 유명했던 고(故) 셸던 솔로가 개발했다. 그는 수억달러 가치의 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선구자로 평가받았지만, 임차인에게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식의 독특한 관리 방식을 고수했다. 과거 셸던 솔로의 방식은 건물의 명성과 동시에 비용이기도 했다.입주사와 중개업계는 이 빌딩 주소가 주는 명성의 대가로 그의 변덕과 비타협적 태도를 감수해야 했다고 기억한다. 솔로는 임차인과 파트너를 상대로 소송을 자주 제기했고, 조건을 맞춰주느니 차라리 공간을 비워두는 편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CBRE의 베테랑 중개인 스티븐 시걸은 "예비 임차인이 솔로의 사무실에 걸린 그림의 화가를 잘못 말하는 식의 작은 일로도 계약이 깨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솔로비예프는 이런 방식이 나인 웨스트의 성장 기회를 놓치게 했다고 본다. 그는 과거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나인웨스트에서 추가 임대를 원했음에도, 결국 타임스스퀘어 인근 새 빌딩으로 옮긴 일을 놓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WSJ는 "맨해튼 최고급 오피스 시장이 지금처럼 소형 우량 임차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 나인 웨스트의 회복은 개별 빌딩 사례를 넘어 뉴욕 상업용 부동산의 새 문법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